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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정신 집약된 이성자 미술관
진주정신 집약된 이성자 미술관
  • 박태홍
  • 승인 2015.07.27 2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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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홍 본사 회장
 진주시내에서 공단지역을 거쳐 김시민 대교와 에나교를 지나면 진주시립 이성자 미술관이 나온다. 화려하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단아한 모습의 건물 형태는 그냥 미술관답다는 느낌이 든다. 1만 3천㎡ 부지에 2층으로 설계된 진주 시립 이성자 미술관은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24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건립, 진주시에 기부했다. 지난 16일 개관한 진주시립 이성자 미술관은 또 하나의 진주문화정신이 집약된 곳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진주의 문화정신이 깃든 곳이라면 시가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남강과 성내동에 위치한 진주성과 촉석루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롭게 문을 연 진주시립 이성자 미술관 또한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길 없으나 영천강변에 김시민 대교와 에나교를 지나 에나로 128번길 14번지에 위치, 예사롭지 않은 깊은 뜻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고 산화한 진주의 상징적 인물이며 에나라는 단어 또한 진주를 대표하는 이 지역만의 고유 사투리이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게다가 자기의 작품 370여 점을 진주시에 기증한 고 이성자 화백 또한 晋州라는 작품을 남길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남달랐음을 보여 줬다. ‘고향 진주는 저에게 영원한 모천입니다. 진주에서의 추억은 부모님의 자애와 더불어 제가 일생동안 예술의 구도자로서 혼신을 다하는데 넉넉한 자양이 됐습니다.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진주를 흠모하고 기리는 것은 저의 당연한 도리일 것입니다’라는 晋州(1960년작 캔버스에 유채)의 화제를 이렇게 달기도 했다.

 고 이 화백은 1918년 진주에서 태어나 1935년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현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일본의 동경 짓센 여자대학교로 진학, 유학길에 오른다. 1938년 이 대학교를 졸업한 이 화백은 미술공부를 위해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간다. 그때부터 2009년 프랑스 남부 투레트에서 타계하기까지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 이 화백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 공로자 훈장까지 수여했다. 고 이 화백은 58년을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구상과 추상이 어우러진 초창기의 작업을 거쳐 1960년 이후에는 생명의 근원인 음과 양의 세계 등을 기하학적인 상징물로 표현, 세계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말년에는 인간과 우주의 존재론적 성찰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다 2009년 향년 92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고 이 화백은 일생동안 삶의 궤적을 담은 370여 점의 작품을 진주시에 기증, 오늘에 이르렀다. 370여 점의 화폭 하나하나에는 고 이 화백의 사랑과 열정 모두가 응집돼 표현되고 있으며 특히 고향 진주를 그리워하는 향수 또한 가미돼 작품화된 것 아닌가 유추해 본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가고 싶은 고향 진주를 갈 수 있는 길은 우주선을 타는 것 아닌가? 이 같은 고 이 화백의 염원이 작품 활동으로 인해 표출되고 있는 듯 말년에는 우주의 존재론적 성찰을 통한 그림들이 눈에 띄는 것 또한 추상적일까? 그런데 고 이 화백의 유족들로 구성된 이성자 기념 사업회 측은 유족들의 개관 유보에도 졸속으로 개관했으며 미술관 전용으로 설계되지 않았고 관장 및 학예연구사(큐레이터)조차 두지 않아 작품 보관 및 활용에 큰 문제점이 있는 것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 당국은 2008년 기증 약정서에 의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 사업이었고 진주시립 이성자 미술관 측의 관계자는 유족들의 일반적인 문제 제기에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유족 측도 시 당국도 이래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진주시립미술관의 작품 기증 및 미술관 건립에 대한 고 이 화백의 유일한 법적대리인 정행길(전 진주여고 총 동창회장) 씨가 답을 내놓았다.

 “고인의 뜻이 존중돼야 한다. 고인은 살아생전 고향 진주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담은 내 작품을 많은 예술가들이 연구 활용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세계로 향해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교육 자료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며 “그분의 유지를 이어가는 것만이 유족, 시민, 시 당국 모두가 해야 할 소임”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유족 측에게는 “자식의 입장에서 미술관 건립이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고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는 참고 인내하면서 좋은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진주시 당국 역시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다 하더라도 강경한 대응보다는 유가족들의 마음도 이해하고 받아들여 진주시립 이성자 미술관이 문화예술의 도시로 우뚝 서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정 법적대리인이 말한 이 모두는 고인의 뜻과 시민, 시 당국, 유족 모두가 바라는 공통분모여야 한다. 그리하여 시립 이성자 미술관이 또 하나의 진주정신이 집약될 수 있는 명소로 우리 모두 가꿔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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