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8:31 (목)
지키고 싶은 대물림 밥상
지키고 싶은 대물림 밥상
  • 이주옥
  • 승인 2015.07.21 2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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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25년간 가족 식탁 지킨 어머님
인스턴트 홍수 속 믿음직한 보약
좋은 음식은 내 가족 건강 밑천

 학교 앞 식당에서 먹은 부대찌개가 너무 맛있었다면서 호들갑 떨던 큰 딸이 갑자기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난 단호하게 ‘내 밥상을 벗어난 사고’라고 단정했다. 진하고 뜨거운 매실차를 끓여서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는 금방 편안한 얼굴로 자리에 눕는다. 지금껏 아이들은 물론 남편도 아파서 병원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감기증세가 있으면 조제약보다는 생강차를 끓여 먹였다. 살면서 내가 가장 뿌듯해 하고 감사하고 있는 일은 가족들의 건강을 나만의 방식으로 지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나의 공은 아니다. 진정한 공로자는 나의 친정어머니다.

 어머니는 내 결혼 25년 동안 모든 기본적인 먹거리를 온전히 대주신 분이다. 된장, 고추장은 기본이고 참기름, 심지어 생선까지도.

 난 철저하게 어머니의 먹거리를 신뢰했고 그에 맞춰 성실하게 가족의 밥상을 차렸다. 다양한 인스턴트 홍수 속에서도 가족들은 내가 차린 밥상에 잘 길들여졌다. 어느 유명한 한의사가 조제한 보약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보약 중의 보약이다.

 한때 어느 가수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라며 불렀던 ‘신토불이’는 그저 흥겨운 가요의 가사 속에 등장하는 신조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토불이는 꽤 무겁고 중요한 진실 된 이야기였다.

 요즘은 생활형편이 나은 사람들일수록 토종 식품을 찾고 신뢰한다. 최근 각종 언론매체에서 먹거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또한 기업들이 음식으로 장난을 치며 우리네 식탁을 위협하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해진 먹거리의 수와 종류가 많아진 만큼 우리식품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달라지고 있다. 최근 외국과의 FTA 체결과 농수산물 개방에 따라 계절에 상관없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는 때깔 화려하고 저렴한 외국산 과일과 곡식들은 우리 고유의 입맛조차 흔들어 놨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네 밥상에는 새하얀 쌀밥이 아닌 빵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우리 고유의 발효음식인 김치가 아닌 치즈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유한 우리네 입맛이 변해가는 상황에서 매번 나의 식탁을 지켜주시기 위해 힘써주시는 친정어머니께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팔순의 친정어머니는 도처에 사는 자식들 먹거리를 손수 가꾸고 익혀서 나누어 주셨다. 믿지 못할 음식들이 판치는 오늘날 어머니께서 손수 키우시고 만들어 주신 음식들은 결국 우리 가족들의 건강 밑천이 되었다. 최근 나에게는 조그마한 꿈이 하나 생겼다. 그 꿈은 내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친정어머니로부터 된장, 고추장 만드는 법을 전수 받는 것이다. 마당 너른 집에 장독 늘어놓고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내 자녀들에게 건강한 밥상을 대물림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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