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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 무명용사 묘와 진동리전첩비.
알링턴 무명용사 묘와 진동리전첩비.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5.07.19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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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본토를 덮쳤을 당시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묘를 지키는 보초병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거센 비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착검을 한 총을 들고 묘지를 지키는 모습이었다. 1921년 건립된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의 묘는 한국전쟁을 포함해 세계 각지의 전투에서 전사한 신원불명의 유해들이 안치된 곳으로 엄선된 모범사병이 보초병의 명예를 가진다. 보초병이 되려면 7쪽에 달하는 알링턴 국립묘지의 역사를 암송하는 것은 물론 안치된 용사의 묘지 위치를 정확히 숙지해야 한다. 하루평균 16회의 의전을 치르며 24시간 365일 묘를 지킨다. 묘를 지키는 보초병은 더 없는 명예로 여긴다.

 미국의 전사자 예우는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2009년 10월 29일 새벽 3시 46분 오바마 대통령이 18구의 미군 전사자와 마약단속국 요원의 주검이 도착한 한 공군기지에 전용헬기를 타고 도착했다. 그는 전사자를 운송한 수송기 앞으로 가 미군 사령관, 법무장관, 마약단속국 국장과 함께 도열해 유해가 운구되는 동안 부동자세로 거수 경례를 했다. 오바마가 일정을 취소하고 공항까지 직접 가 전사자를 영접한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미국의 전사자에 대한 예우는 자국 군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5월 주한미군은 용산기지 내 한 동산에서 우리로서는 놀랍기 그지없는 행사를 치렀다. 석 달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임무 수행 중 폭탄테러로 전사한 고 윤장호 하사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식수를 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인을 자국 군인과 다를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미군의 예산으로 치렀음은 물론이다.

 미국이 전사자를 대하는 태도는 일반 국민도 마찬가지다. 전사자를 운구하는 비행기에 탄 미국인은 전사자 운구를 마치기 전까지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는다. 운구차량이 지나가면 차량들이 길을 비키고 출신 학교는 대개 동상이나 비석을 세워 동문의 희생을 기린다.

 전사자 뿐 아니라 명예훈장을 받은 이들에 대한 예우도 남다르다. 미국 역사에 기록되는 기록물인 명예 훈장 명부에 이름이 오르고 자녀들에게는 미국 사관학교 입학을 보장한다. 대통령을 포함해 상관이라도 명예 훈장 수여자에게는 먼저 거수경례를 하는 게 관례다. 명예 훈장 수여식이 있을 때는 정규 방송을 잠시 중단하고 수여식을 방송한다. 각종 행사와 공항, 호텔 등지에서 최고의 예우를 받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과 맥주 한 잔을 하고 싶다는 최연소 명예 훈장 수여자와 맥주를 마셨다. 시민들은 시가 행진하는 명예훈장 수여자를 환호로 맞이한다.

 미국은 그저 강대국이 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군대에서 죽는 것은 개죽음이라는 국민의 자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군대에서 썩는다는 군통수권자의 비하를 지적하지 않더라도, 2002년 연평해전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장례식 때 월드컵을 보러 일본으로 간 대통령과 정치적 요구에 따라 이들의 명예를 외면했던 정치권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고 우리는 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이 그것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1996년 서울대가 개교 50주년을 맞아 6ㆍ25전쟁에서 전사한 서울대생 27명의 이름을 석판에 새기고 정부가 6ㆍ25 전사자 유해발굴에 적극 나서는 등 전사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최근 영화 연평해전을 통해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호국영령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6ㆍ25전쟁 당시 마산을 지켜냈던 해병대의 혼이 살아있는 해병대진동리지구전첩비 20여m 앞에 가스충전소 허가가 났다. 법적으로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허가를 신청한 쪽도,허가한 관청도 전첩비는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병대전우회와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저지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나 사업자나 관청은 반대민원을 무마하는 데만 관심을 보이는 실정이다.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 묘를 지키는 보초병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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