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3:31 (금)
조기교육의 효용에 대해
조기교육의 효용에 대해
  • 이유갑
  • 승인 2015.07.14 2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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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갑 지효 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 심리학박사
 ‘당신의 자녀도 영재로 키울 수 있습니다’라는 교육광고에 혹해보지 않은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자신의 자녀를 다른 집 아이보다 더 똑똑하게 잘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이 상업적 선전은 과연 어느 정도 진실일까?

 결론적으로 이 말은 허위 또는 과장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으로 태어난 아이가 유능한 전문가가 가르치는 어떤 특별한 교육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영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영재는 빼어나게 공부를 잘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특정한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의미한다)

 인지발달 분야에서 훌륭한 학자로 인정받는 피아제(Piaget)의 여러 연구들 중에 ‘훈련효과 연구(Training Effect study)’라고 불리는 재미난 연구가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어떤 과제를 일찍부터 반복해서 가르치고 훈련하면, 그 또래 아이들의 대부분은 전혀 해내지 못하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많은 부모들은 자녀의 놀라운 능력(?)에 흥분하게 마련이다. 심지어는 ‘우리 아이가 혹시 영재가 아닐까?’하는 행복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피아제는 이 아이가 보여주는 성과는 그야말로 착각에 불과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예를 들어서, 다른 아이들은 못 푸는 과제를 해결한 아이가 꼭 같은 논리가 담겨있는 또 다른 과제를 해보라고 했을 때 해결해 낸다면, 이 아이의 능력은 남다르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해내지 못한다면, 이 아이가 보여준 성과는 단순한 훈련 효과일 뿐이다.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유럽에 진출하려는 수많은 한국의 음악도들이 명문 음악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또는 유수한 콩쿠르에 입상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한국 음악도들의 일반적인 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쪽 관계자들의 반응 중에는 ‘한국의 학생들이 미리 준비해서 연주하는 실력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뛰어나지만, 미리 알려 주지 않은 새로운 연주를 하라고 했을 때에는 귀를 의심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개개인의 음악적 재능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옳은지가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조기교육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무엇일까? 결론은 “적절한 시기에 그 아이에게 맞는 적절한 교육적 자극을 준다면 아무런 교육적 노력을 하지 않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이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발달의 여러 측면들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부모들은 이 교육적 자극이 우리 아이의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꽃나무를 키울 때 너무 일찍부터 물과 거름을 많이 주면 싹이 썩어 버리고, 물과 거름을 아예 주지 않으면 시들시들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때맞추어 물과 거름을 적당하게 주고 햇볕을 듬뿍 비추어주면 그 꽃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앞에서 살펴본 피아제의 ‘훈련효과 연구’처럼 남보다 빨리 연습시키면 일시적으로는 남보다 나은 수행을 보여주지만, 이렇게 나타난 결과가 이 아이에게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능력이 생겼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길고 긴 배움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심리적 성취동기를 잃어버리게 하는 어리석은 교육이 될 수도 있다.

 조기 영어교육과 관련한 여러 연구의 결과들도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하나의 사례로서 동덕여대 우남희 교수가 4세와 7세 아동들에게 영어 실험교육을 한 결과, 조기교육이 효과가 없음을 입증한 ‘영유아에 대한 조기 영어교육의 적절성‘연구를 들 수 있다.

 이 연구팀은 영어교육 경험이 없는 4세아 10명과 7세아 13명에게 주 2회씩 모두 8차례 영어교육을 한 후 교육과정과 학습효과 등을 분석했다. 나타난 결과에 의하면, 교육 후 시험(92점 만점)에서 4세아 집단은 평균 29.9점, 7세아 집단은 60.6점을 얻었고, 영어발음에서도 7세아 집단이 4세아 집단보다 월등하게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4세 또래의 아이들은 학습내용에 대한 흥미와 이해가 낮고 통제가 어려워서 사실상 교육이 잘되지 않았다.

 이외에도 너무 어릴 시절부터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교육시키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뇌의 언어정보 처리 회로에 과부하가 걸려서 한국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영어도 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말하자면, 아이에게서 교육적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발달의 싹이 돋아나지 않았을 때 무분별하게 주어지는 조기교육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마다 발달의 싹이 돋아나는 속도가 다르고, 또 어떤 싹이 남다르게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자녀들의 심신의 발달 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하면서 그 아이에게 어울리는 교육적 자극을 제때에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좋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남이 장에 가니 나도 장에 가듯 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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