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0:25 (토)
다문화의 덫
다문화의 덫
  • 김은아
  • 승인 2015.07.13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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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아 김해여성복지회관 관장
 오늘도 미농은 눈물을 보였다. 소리 없는 울음 앞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왜 한국 엄마들처럼 아이들을 키우지 못하냐고 타박을 하고 너를 데리고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느냐며 돈값을 하랜다. 그러지 않을 거면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등을 떠민단다. ‘어떻게 했냐?’고 하니까 그냥 앉아서 울기만 했단다.

 이주여성 미농의 하소연이 오전 내내 귓전을 맴돈다. 가난이 싫어 결혼을 포기하고 살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한국남자와 결혼하면 가난하게는 살지 않을 것 같아 먼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호주머니에 단돈 만 원을 가지고 있기가 힘들다고 했다. 모든 경제권은 남편이 가지고 있고 자기에게 주어진 생활비 카드는 쓰는 대로 남편의 휴대폰에 뜨게 된다고도 했다. 아이들 유치원 상담은 손윗동서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아이들 밥 챙겨 먹이는 것도 윗동서의 말에 따라야 하고, 마트에서 장보고 온 것도 검사 맡아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와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다문화가정 프로그램엔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이주여성들이 함께 모이면 못된 것만 배우고 아이를 두고 도망갈 궁리만 한다고도 했단다. 아이들에게 절대 베트남 말은 가르치면 안 된다고도 했단다. 그러면서 자기에게도 베트남 가족과 연락하고 지내지 말라고 했단다. 간혹 휴대폰을 검사해서 베트남 동생들과 전화한 흔적이 있으면 불같이 화를 낸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에게 한국인이 되라고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데….

 왜 그 남자는 이 여자와 결혼했을까? 문득 그 남자가 많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화려하게 포장된 다문화가정의 이야기들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수기에는 전부 한국에서의 생활이 행복하다고 쓰여 있다. 방송 매체나 언론에서 보여지는 것은 그들의 성공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니면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와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조금씩 각색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보여지기도 하지만 아직은 잘 사는 나라에 시집온 운 좋은 여인으로만 비쳐지는 부분이 더 많다. 내 옆에 있는 미농은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에 이주민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다. 김해에도 2만 3천여 명의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다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배척의 대상인 타문화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 조상들이 가진 외침(外侵)의 역사적 DNA가 우리의 몸속에도 전해져 옴인지 ‘우리’라는 테두리를 만들어 놓고 우리 아닌 그 누구도 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강요한다. 우리문화를 배워서 우리와 같아지라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같아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소통과 공감을 외치면서 정작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꺼려하고 있다. 그들에게 틈을 내어주지 않고 그들과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혼혈아라는 멍에를 씌운다. 그들의 장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약점과 단점을 앞세워 무시한다. 우리의 틀 안에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배척하고 있다. 동상동 거리에 이주민들 서너 명이 함께 다니면 동네에 불량배들이 우글거린다고 말한다. 이런 우리의 의식과 시선이 바뀌지 않고는 결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

 말없이 가만히 티늉의 손을 잡았다. 흐느끼는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아 주었다. 잦아드는 숨소리를 느끼며 그녀의 삶이 좀 더 평안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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