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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과 일본의 양심
세계문화유산과 일본의 양심
  • 정창훈
  • 승인 2015.07.08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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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시인ㆍ칼럼니스트
 유네스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들을 발굴 및 보호, 보존하고자 1972년 1월 16일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제17차 정기총회에서 채택된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보호협약’을 채택했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국제적인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관광객 증가와 이에 따른 고용기회와 수입 증가 등을 기대할 수 있고, 정부의 추가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세계유산이 소재한 지역 공동체 및 국가의 자긍심이 고취되고, 자신들이 보유한 유산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가능한 원 상태로 보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조선인의 강제노역을 인정하면서 메이지산업혁명의 유산인 ‘군함도’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7월 5일(현지시각) 독일 본 월드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심사결과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날 일본 정부대표단은 위원국을 상대로 한 발언에서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노역을 했다”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 또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전략에 포함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강제노역‘ 인정을 이끌어낸 것은 우리 외교의 성과로 평가되지만,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를 부인하는 언급이 나오면서 논란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에 이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도 일본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시설에서 조선인을 강제노역에 동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세계유산위원회의 등재 결정 직후 도쿄에서 기자들에게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6일 전했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강제노동이 아니다”는 입장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본 내 정치적 발언이라고 하면서 “괘념치 않겠다”는 것과 일본의 후속조치 이행 여부에 대해 “일본의 양심의 문제”라고 밝힌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외교적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은 과거사 왜곡을 하고 있는 일본 쪽에 있는데 오히려 외교적인 이유를 핑계로 일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모습이다.

 강제징용의 상징인 ‘군함도’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해저를 뚫고 만들어진 깊은 탄광에서 하루 18시간 이상 힘든 노동을 하면서 노동착취와 인권을 유린당한 곳이다. 일본은 아직도 사죄는 커녕 오히려 관광지로 개발했다.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우리가 조금만 약점을 보이면 등 뒤에서 칼을 꽂는 본성은 임진란, 병자수호조약 이후 어긋난 적이 없다. 정부는 아우슈비츠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선례를 충분히 검토하고 이를 적용시켰어야 할 일이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나치에 의한 유대인 인종학살의 현장이자 인류에 행한 극악한 범죄라는 점을 밝히는 명백한 증거”라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를 들었다. 아울러 “사상의 자유와 영혼의 자유를 말살하려 한 나치에 대항해 끝내 이긴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준 장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치의 잔혹성을 잊지 말고, 야만과 인종차별을 기억하고, 잘못된 이념이 불러온 비극을 후세에 전하고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197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아우슈비츠는 과거의 끔찍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하자는 데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반면,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비롯한 ‘군함도’는 근대산업시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등재된 것이기 때문이다.

 쇼카손주쿠는 아베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시골학당이다. 그는 오키나와와 조선을 빼앗고 만주와 중국을 침략하라고 가르쳤다. 4차례 총리대신을 지내며 한일합방을 이끌어냈던 이토 히로부미와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이 학당 출신들이다.

 한일 양국이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관계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강제노역 해석을 둘러싼 전선확대는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정부는 과거 우리 민족에게 행했던 군위안부, 강제징용, 원폭 피해자 문제 등 일본의 파렴치한 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죄, 배상이 이루어질 때 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유네스코가 실현하고자 하는 ‘평화’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라는 명분의 이면에는 일본이 저지른 강제징용, 노동착취, 인권말살, 침략, 제국주의 등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악행들이 숨어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강제노역’이라 하고 일본에 와서는 ‘일하게 됐다’로 한다면 당연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는 언감생심이다. 자국 내 관광지로도 부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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