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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과제인가
누구의 과제인가
  • 정창훈
  • 승인 2015.07.02 2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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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시인ㆍ칼럼니스트
 인간은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살아가고 있어도 그 개인이 유일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 상호 간의 존중이 전제돼야 한다.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개인심리학’을 수립했고 인간의 행동과 발달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존재에 보편적인 열등감ㆍ무력감과 이를 보상 또는 극복하려는 권력에의 의지, 즉 열등감에 대한 보상욕구라고 인식한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관계 속에서 타인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한 훌륭한 방편을 제시했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에 의해 발생하는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타인과 자신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자식들이 잘 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부모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자식들이 그 이상의 인생을 살아가길 원한다. 이런 관심과 사랑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자식들의 삶에 불쑥 끼어들어 이 모든 것이 “너를 위해서야”라고 하면서 부모들의 시각으로 지시하고 강요하고 타이르고 협상하려고 한다. 부모들은 자신의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너 잘되라고 잔소리한다. 부모들이 바라는 분명한 무엇이 있다. 친척, 이웃 사회가 바라보는 이목이 있기에 체면을 세워주었으면 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배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는 자식을 위한다기 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위선된 잔소리다. 자식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저항하려고 할 것이다.

 나 자신도 어릴 때 가져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자식들에게는 꼭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갖고 싶은 컴퓨터는 기본이고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사줬다. 신발과 옷도 브랜드 있는 것으로 사주고 입시학원, 외국어 학원, 예체능 학원도 보냈다. 아이의 인생이 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무엇이든지 최고가 되길 기대했다.

 그렇게 늘 아이만 생각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인생에서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느 정도 아이의 과제를 떠맡았다고 한들 아이는 독립적인 개인이다.

 부모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진학할 학교나 직장, 결혼상대, 일상의 사소한 생활마저도 부모의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자식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시키는 일이나 심부름도 잘했고 입시, 외국어, 음악, 미술, 논술학원과 태권도장까지 열심히 다녔다.

 아무리 숙제가 많은 날에도 그날그날의 일기를 쓰는 것도 거의 의무수준이었다.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도 가장 먼저 챙겨보는 것은 아이들의 일기장이었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일기장을 읽어보고 흡족하지 않으면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 일기장을 다시 쓰라고 한다. 며칠 동안 출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돌아오는 날에는 모두가 피곤한 날이다. 둘째 아들은 특별히 쓰고 싶은 것이 없는지 ‘반성’이라는 단어만 몇 페이지 쓴 날도 있었다.

 학교 성적은 항상 5% 이내에 들어야 한다. 악기를 다룰 줄 알고 그림도 잘 그려야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하고 외국어도 생활화해야 한다. 주문이 너무 많았다. 누구의 삶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나의 삶에 부모님이나 아내가 간섭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내가 할 일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한다는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이 주인이 돼 그 사람의 인생에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니 그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으니 혹시라도 간섭하면 거절하면 되고, 도움을 청할 때만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 결국 자식에 대한 기대도 포기도 부모 스스로 한 것이다. 이것이 부모의 과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과제에 간섭하는 것은 자신이 가꾸어야 할 삶을 더욱 무겁고 힘들게 한다.

 각자의 삶에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면 자신의 과제에 적절한 경계선을 정하고 다른 사람의 과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의 과제인가의 답은 구체적으로 인간관계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멋진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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