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1:37 (토)
을의 갑질
을의 갑질
  • 김혜란
  • 승인 2015.07.01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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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ㆍ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주점에서 일한 알바생이 밀린 임금을 노동부에 진정서까지 내어 받게 됐다. 그런데 32만 원 중 10만 원이 10원짜리 동전이었다고 한다. 진정서를 넣은 데 대한 앙갚음인 셈이다. 이 업주는 최근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밀린 임금 40만 원을 10원짜리 동전으로 지급하려고 준비했다가 울산고용노동지청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최저 시급보다 낮은 임금을 제때에라도 줬으면 이런 일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가 성질 낼 일인가.

 ‘알바가 갑이다’라는 TV 광고를 본 적 있다.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 시급은 5천580원’, ‘대한민국 알바들의 야간근무수당은 시급의 1.5배’ 등 아르바이트생의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소재로 한 광고였다. 알바생들과 네티즌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중소 자영업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아르바이트 근무자와 고용주간의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광고를 중지하라고 단체로 외쳤다.

 알바는 ‘아르바이트’의 준말이다. 원래 아르바이트는 ‘노동’이란 뜻이고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직업이 있고 평생직장이 보장된다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본업이 있으면서도 또 다른 일을 더 해서 일정한 수입을 올리는 뜻으로 쓰인다.

 ‘노동’으로 가정경제를 책임지던 가장들의 월급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들게 되자, 주부가 파트타임을 뛰고 자녀들은 알바를 시작했다. 심지어 알바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청년층도 생겼다.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라, 부모에게 계속 손 벌리기 죄송해 알바를 이어간다. 자꾸 퇴짜 맞는 취업면접에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남은 현실은 번듯한 직장생활이 아니라 알바만 몇 군데씩 뛰는 ‘전문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80년대 초반 제5공화국 시절, 졸지에 학교 다닐 일이 막막해진 적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학생들이 과외알바를 못하도록 금지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고, 결국 밤늦게 몰래 학생 집을 방문해서 과외를 해주고 새벽같이 퇴근(?)하는 일을 2년 가까이 계속했다. 이른바 ‘몰래바이트’라 불리던 알바였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하지 말라는 짓을 몰래 하고 다니던 때의 그 분노와 죄책감이란…

 사실 그 시절의 알바는 소수의 일자리를 뜻하는 특수용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알바는 일반적인 용어가 됐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가 알바를 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가능하며, 특정한 직종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직종에 다 있는 일자리다. 배달알바부터 주점알바까지, 몸 쓰는 일부터 고도의 머리 쓰는 일까지 다 알바를 채용한다. 대부분 학력도 상관하지 않는다.

 알바가 보편화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은 기술의 발달이다. 컴퓨터가 산업에 도입되면서, 힘든 일은 컴퓨터를 이용한 기계가 하고 나머지 일은 힘이 약한 여성의 파트타임제나 청소년들의 알바를 써도 가능하게 됐다.

 또 하나, IMF 이후 가장이 정리해고나 부도로 직장을 잃고 집에 머무는 동안 가정주부와 자녀들은 많든 적든 경제활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가정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나가지 않던 비용이 많이 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통신비 항목이다. 형편상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최신기종으로 자주 바꿔 줄 수 없는 집 청소년과 청년들이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가파르게 올라버린 대학 등록금도 알바시장 형성에 한몫을 했다고 봐야 한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간 경우, 연간 최소 2천만 원은 필요하고, 결국 학업인 본업은 제쳐놓고 알바에 매달리는 대학생들이 늘어났다.

 불경기 속에서 기업주들은 알바를 고용한다. 이윤만을 쫓는 일부 기업주들은 수당과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 혹은 일거리가 줄어들면 해고를 쉽게 하기 위해서 알바를 쓰기도 한다. 더러는 알바의 밀린 임금을 주지도 않고 쫓아내거나 스스로 나가도록 일부러 임금을 밀려 놓는다. 어떻게든 받아 내려고 하면 10원짜리 동전 따위로 지불하면서 오히려 적반하장 짓을 한다. 자신 역시 을인데, 또 다른 을에게 갑질을 하는 것이다. 다 돈 때문이라고? 그렇지 않다.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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