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2:54 (토)
대한민국 감정로봇 기다리며
대한민국 감정로봇 기다리며
  • 김혜란
  • 승인 2015.06.24 2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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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ㆍ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인간형 감정로봇 ‘페퍼’가 출시됐다. 페퍼는 사람의 목소리를 인식하고 감정을 이해하며 스스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로봇이다. 인공지능과 통신기능을 가지고 있고 스마트폰처럼 앱을 설치할 수 있다. 키 1m 21㎝, 몸무게 29㎏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크기인 페퍼는 한 대당 180만 원 정도의 가격인데 출시되자마자 초기 공급 물량 1천대가 모두 팔렸다. 로봇 선진국인 일본에서 산업용 로봇의 증가율은 18%로 예상되는데 비해, 페퍼 같은 인간형 로봇의 증가율은 13배로 예상될 만큼 성장성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인간형 감정로봇은 인공지능이 필수다. 에어컨이나 가습기에 내장되는 인공지능 수준이 아니라 페퍼 정도이면 인간지능 수준이다. 페퍼는 표정과 음색을 살핀 뒤 자신에게 흥미를 보이는 상대방의 감정까지 읽는다. 자유롭게 움직이며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반응하고, 감정에 따라 목소리 톤이 올라가거나 한숨을 쉬기도 한다. 악수를 청하면 손을 맞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고개를 끄덕인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노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약 복용을 잊고 있다는 점을 알려줄 수도 있고 은행창구나 패스트푸드 판매점에서 고객의 주문을 받을 수도 있다. 1분 만에 매진된 1천대를 구입한 사람들 중에는 페퍼를 자식처럼 입양하거나 말동무 삼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이 많다고 한다.

 TV화면에서 페퍼를 쳐다보는 일본인들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하나같이 상기돼 있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역시 밝고 스스럼없어 보인다. 같은 로봇이라도 산업형 로봇을 대할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마치 말 잘 듣는 동생이나 예쁜 손자를 대하는 표정이었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은 오랫동안 영화에서 만났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는 페퍼의 부정적인 미래영화다.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이 생기자, 입양한 아이로봇을 내다 버리는 인간부모가 나온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her’는 인공지능 OS(operate system)와 사랑을 나누는 인간남자 이야기로, 페퍼가 성인여자일 때의 SF 로맨스다. ‘트랜센던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로, 인공지능 연구원의 두뇌가 페퍼에 업로드됐을 때 나타날 슈퍼컴퓨터 이야기다. 영화 ‘엑스 마키나’는 인공지능에 대해 공학적으로 접근한다. 컴퓨터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튜링테스트의 당사자가 매혹적인 여성 페퍼에게 유혹당하는 남자 이야기다. 영화 ‘채피’는 어떤가. 페퍼가 환경과 인간에 의해 어떻게 성장해 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마치 로봇 ‘맹모삼천지교’ 같은 영화다.

 최근 만난 로봇영화들은 보통사람들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특히나 현대사회의 인간이 잃어가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풍부하게 쓰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사용으로 인간을 감동시키거나, 심지어 인간을 사랑에 빠트리며 위험에 몰아넣기도 한다. 인간을 이용해서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도 하고, 도대체 이러고 있는 내가 누구인지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만드는 로봇 멘토를 등장시킨다. 한마디로 페퍼의 예고편이었다.

 1분 만에 1천대가 팔린 페퍼는 7월에도 1천대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집집마다 페퍼가 뛰어다닐 날이 금방일 것이다. 이제 페퍼는 한 대, 두 대… 로 세면 안 될 것 같다. 한 명, 두 명, 아니 또 다른 셈 단위가 필요하다.

 사실은 인공지능 시장을 미리 광고하는 것 같다. 로봇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인공지능을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장형성 과정인 것이다. 인간만의 고유영역이라 믿었던 감정들도 페퍼처럼 돈 주고 사서 다시 장착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로봇에게 역으로 당하지만 않는다면 거의 영생의 비밀을 풀 수도 있을 터이고, 며느리가 너무 완벽하다면 혹시 페퍼 며느리는 아닌지 뒷조사 의뢰하는 시어머니도 나올지 모른다.

 창원의 로봇산업단지, 로봇벨트, 마산 로봇랜드도 꽤나 오래된 이야기다. 마산의 진북산업단지가 로봇산업의 메카 테스트 플랜트입지로 선정됐다고 한다. 감정로봇은 일제부터 써야 할까. 아니, 일본 국적 페퍼부터 입양해서 키워야 할까. 창원 로봇산업단지에서 태어난 페퍼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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