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청소년 2명이 아파트 옥상에서 함께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세상을 향해 견디기 힘들다는 적신호를 계속 보냈지만 결국 ‘도움의 손’을 잡지 못한채….
두 친구는 학교폭력으로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위 기사는 얼마 전 한 언론에서 짤막하게 나온 기사입니다.
입시전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한 대화보다는 시험을 잘 보았는지 몇 등 했는지만 요구하는 현실이 됐습니다.
학교폭력은 그 아이 하나의 탓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 교사, 학생들 모두 그 죽음을 방관한 죄의식을 오랫동안 마음에 품을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대학위주, 지나친 경쟁의 교육정책이 아닌지, 부모님들은 학교폭력을 단순히 아이들 다툼으로 생각하고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되돌아 봐야 할 때입니다.
학교 폭력은 아이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를 조장하는 사회 문화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회구조에서 계층 간의 이동을 위해서는 교육밖에 기댈 수 없습니다. 당연히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공부에 매진하도록 채찍질하고 학생들은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공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꿈을 꾸고 미래를 위해 자신의 적성을 찾기에도 바쁜 아이들에게 공부라는 과업을 강요하는 것은 많은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스트레스는 학교폭력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되기 일쑤고 급기야는 앞서 말한 것처럼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학교폭력 등을 사회구조 탓으로 몰아갈 수만은 없습니다. 여러 가지 완충재를 만들어 보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 방지 캠페인이나 범죄예방교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학교폭력의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잘 지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막연히 누군가에 의한 가르침으로 어떤 일을 지양하는 것과 체감함으로써 지양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학교폭력 방지 캠페인은 이런 간극을 효과적으로 줄여줌으로써 학생들 스스로가 깨닫게 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범죄 예방교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범죄가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나 개인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한다면 이는 분명 청소년 범죄 예방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 자명합니다.
학교폭력 캠페인, 범죄예방교실 등 물론 이러한 활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학생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과거 우리는 많은 형제들 속에서 자라면서 양보, 배려, 손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 우리 부모의 모습은 내 아이가 최고며 내 아이가 손해보는 것을 참을 수 없으며 양보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똑바로 말하고 확실히 주장하도록 키우고 있습니다.
잘못을 하면 꾸짖고, 사랑으로 다독이는 가정교육이 절실할 때입니다.
가정은 사람 됨됨이의 바탕을 닦아주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교육현장입니다.
미래를 이끌어 갈 우리의 희망 청소년. 가정 안에서 부모와 자녀 간의 진심어린 대화를 통해 소통을 한다면 학교폭력예방과 더불어 화목한 가정을 이루지 않을까요? 어른들은 모범학생, 불량학생을 떠나 내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자식같은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준다면 학생들도 닫힌 마음의 창을 열 것이고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도 없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