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2:29 (목)
불편한 진실을 허하라
불편한 진실을 허하라
  • 원종하
  • 승인 2015.06.17 1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원종하 인제대학교 글로벌 경제 통상학부 교수
중동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MERS))가 발생한지 한 달이 다 돼간다. 증가 속도가 조금 주춤한 것 같더니 경남과 부산, 대구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장기전이 염려된다. 국민의 삶은 증폭되는 불안과 궁금증으로 피폐해 져가고 있고 그동안 회복세로 돌아서려던 경제는 불황으로 치닫고 있다.

 어이없게도 정부는 발병 18일이 지나서야 메르스 감염 병원을 공개하고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아까운 목숨을 잃고 학교가 휴교를 하고 다중(多衆)이 모인 곳이면 함께 하기를 두려워하며, 마스크를 쓴 채 서로의 얼굴을 봐야 하는 현실에서 국민의 하루하루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우리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세월호라는 크나큰 사건을 경험했고, 10여 년 동안 사스와 에볼라 등 여러 호흡기 관련 질병들을 겪어 오면서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매뉴얼이 있었다. 그러나 안이한 대처와 거짓된 발표,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과 컨트롤 타워 부재와 같은 과거와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리더의 올바른 판단과 소통, 실행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중앙과 지자체, 병원, 전문가 등이 참여한 수평적 관계 속에서 소통하지 않으면 위험은 또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것이다.

 세월호 때의 해양경찰에 이어 이번에는 질병관리본부를 해체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안전처 차례인가?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냥 없앤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초동대응을 잘했더라면 이렇게 까지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골든타임은 놓쳤지만 마지노선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지금부터라도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과 철저한 방역(防疫), 그리고 신속한 의사결정 등 다각적인 사고로 더 이상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국가적 재난이 초기대응에 실패 한 것은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서야 할 일인가? 괜히 나만 손해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소아적(小我的)인 생각을 우선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정부의 무능은 개인의 무능을 넘어 조직의 무능에서 나온다. 조직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계질서와 계층에 따라 윗사람의 뜻을 파악하게 되고 윗사람은 또 그 윗사람의 뜻을 먼저 헤아리게 된다. 평상시에 묵묵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아 인정받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주도적으로 소신껏 일하는 사람은 드물고 눈치와 아부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행태들이 반복된다. 결국 공익(公益)을 위한 사명감과 책임감은 사라지고 개인의 이익과 영달 등 사익(私益)이 판치는 문화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신뢰(信賴)란 어떤 제약이나 조건 없이 상대가 나에게 당연히 해줄 것이라고 믿는 바다. 반대로 불신은 상대가 무엇인가를 숨기려고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불안해 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정보를 공개하고 협조를 구했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愚)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고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시대는 지났다. 정부의 모든 정보를 다 투명하게 공개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한 내용만이라도 정직하게 제때에 공개하는 것이 최선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기대한 만큼 믿는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찾게 된다. 정부가 솔직하고 정직하며 당당하게 불편한 진실을 허(許)할 때 국민은 메르스에 대한 공포를 넘어 정부를 신뢰하고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이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