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5:34 (금)
할머니, 꽃으로 피다
할머니, 꽃으로 피다
  • 김은아
  • 승인 2015.06.16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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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아 김해여성복지회관 관장
 아침에는 ‘진행하자’, 오후에는 ‘취소해야지 아니면 연기할까’ 행사를 준비하는 일주일내내 일의 두서가 없고 마음이 심란하다. 갑자기 온 나라를 뒤덮은 메르스 때문에 한달 전부터 준비한 ‘할머니의 날’ 행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그러다 문득 열심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할머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노랫말을 외우고 춤을 배우느라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채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래, 하자. 좀 더 청결하게 하고 조심하면서 진행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주위의 우려를 뒤로 하고 축제를 펼치자 마음을 먹으니 일은 쉽게 풀려나갔다.

 할머니들이 수업 중인 교실에 잠시 들렀다. “내는 그림 잘 못 그린다. 생전 한 번도 그리본 적 없데이”, “뭘 그려야 될꼬” 그러시면서도 손에는 색연필이 쥐어져 있다. 할아버지와 함께 살 집도 그리고 꽃도 그리고 나비도 그렸다.

 무거운 마음을 아는 지 행사 당일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꼭 내 기분을 닮았다. 하지만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강당에 풍선도 달고 어르신 가슴에 달 장미꽃도 준비했다.

 1층 입구에는 할머니들이 한달 내내 준비한 글과 그림들이 이젤에 자리를 잡았다. 예사롭지 않은 한글 필체 밑에 달린 그림들이 팔랑거리며 방문객들을 먼저 맞이한다.

 “할머니들이 글씨가 맞아요? 정말 잘 쓰셨다.”

 연신 감탄을 하는 분들을 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간단한 회관 소개와 인사말들이 끝나고 할머니들의 장기자랑 순서가 시작됐다. 실버대학 할머니들이 하얀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섰다. ‘내 인생의 박수’와 ‘미고사’를 간단한 율동과 함께 불러서 큰 박수를 받았다. 이에 뒤질세라 성원학교 할머니들께서는 목에 스카프를 매고 ‘내 나이가 어때서’, ‘고장난 벽시계’를 열창했다. 먼저 노래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셨던 실버대 어르신들도 박수치며 노래를 부르셨다. 글을 배우는 짬짬이 연습하신 노래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제는 몸으로 보여줄 때가 됐다. 1년간 열심히 배운 댄스를 대중에게 자랑하는 순서가 됐다. ‘토요일밤에’, ‘천연지기’ 노래에 맞춰 움직이는 몸놀림이 예사롭지가 않다. 대한노인회에서 준비한 기공댄스는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들도 충분히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가뿐 숨소리 사이에 웃음소리가 함께 새어 나왔다. 흐르는 땀방울만큼이나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 순수한 어린아이를 닮았다.

 뒤이어 댄스 강사님의 축하 무대는 어르신들의 쌈짓돈을 헐게 했다. 간만에 보는 손자의 재롱 같다시며 용돈을 손에 쥐어 주시기도 했다. 최선희 한국무용단의 공연은 아름다운 한복의 맵시가 먼저 할머니들의 시선을 끌었다. ‘연등아리랑’, ‘태평무’ 공연은 할머니의 박수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한 트로트 메들리 시간에는 자리에만 앉아서 박수를 치시던 할머니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회관 봉사자들과 함께 어깨춤을 추며 신명난 한판을 벌였다. 이 시간은 가정과 자식을 위해 희생만을 해 오신 할머니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 풀어놓고 즐기는 시간이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지고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꽃이 피었다.

 출출해진 속을 채워 줄 식사시간이 됐다. 따뜻하게 준비된 음식들을 들고 자리에 앉으신 할머니들은 공연 뒷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셨다. ‘춤을 더 잘 출 수 있었는데… 내가 중간 부분에서 틀려서…’, ‘내년에는 단체복을 맞추어야겠어’, ‘혼자 부르면 노래 못하는데 같이 하니 돼대…’ ‘그림 연습을 더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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