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7:19 (토)
재난시대 소통 매뉴얼
재난시대 소통 매뉴얼
  • 김혜란
  • 승인 2015.06.10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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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ㆍ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몇몇 지역단체장들이 메르스 관련 대응책 기자회견을 한다. 중앙정부가 하지 않는 일을 호기롭게 대신할 작정으로 보인다. 환자로 의심되면 의료행위를 거부하는 병원도 있으니, 관할 병원으로 오면 안심하고 치료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선심 쓰듯 호객(?)하기도 한다. 관계 당국과 병원 측들은 다투듯 기자회견을 이어간다. 고마워해야 할까.

 외국 관광객의 연이은 입국취소는 물론, 세월호 때처럼 온갖 단체행사가 깡그리 취소되고 각종 대중강의도 연기됐다. 학교나 유치원도 교문을 걸어 잠근 곳이 수천 곳이다. 대부분의 의심환자나 확정환자가 병원 내에서 발견되거나 전이되는 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서로 만날 일도 꺼린다. 결혼사진 콘셉트로 마스크를 쓰고 찍기도 한다. 안타까운 부고 앞에서도 병원 내 빈소를 찾기가 꺼려진다. 메르스 사태는 국민들이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싸우게 만들고 있다.

 사람 만나는 일은 꺼려하면서도 이른바 온갖 동원 가능한 정보는 다 주고받는다. 주말에는 도로가 휑하니 뚫렸다며 사람들의 공포심이 얼마나 큰지를 소리높여 말한다. 부산 중동 사는 노인이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취급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대한민국 또 다른 중동에 사는 초등학생은 뉴스 속 ‘중동’이 자기가 사는 ‘중동’인 줄 알고 겁먹고 울었다는 엄마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외국경제통은 이달까지 메르스 사태가 계속되면 대한민국 수출이 얼마나 줄어들 것인지를 마치 협박(?)처럼 발표한다. 별의별 이야기가 다 돌아다니다 보니 좀 더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고 싶어서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름대로 관계망을 동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의사, 경찰관, 공무원 등 이른바 믿을만한 아는 사람들 전화에 불이 난다.

 같은 내용의 정보인데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때도 있고 불안해질 때도 있다. 믿음이 가기도 하고 그냥 소문인 것 같기도 해서 헷갈린다. 특히 재난 매뉴얼을 제대로 시행 못해내는 관계당국하에서는 많은 소문 중 하나만 듣고 판단해버리는 일은 극히 위험지수가 높다. 바이러스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소통자체가 위험해진다는 뜻이다.

 이렇듯 재난에 버금가는 사태 속 기억해야 할 소통 법칙이 있다. 첫째, 확인하고 또 확인하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데 아는 척하면서 전달하는 것은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지수를 높이는 일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삽시간에 남들도 위험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차라리 언급하지 않는 것이 낫다. 부득이한 상황이라면 최대한 사실에 대한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화중에도 상대가 말한 내용을 요약하거나 그대로 따라 하면서 그 내용으로 말한 것이 맞는지 재차 확인하는 작업이 요긴하다.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들은 서로 믿고 위안도 받고 싶어 한다. 살아남고 싶은 만큼, 자신을 이해해줄 상대가 필요한 것이다. 서로 믿음을 쌓고 싶을 때는 상대방 마음과 내 마음이 같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둘째, 페이싱(Pacing)하라. 상대방이 현재 느끼고 있거나 진행되고 있는 경험을 그대로 묘사하면서 대화한다. “지금 제게 그런 말을 하셨고, 좀 불안한 표정을 지으셨죠. 그렇지만 필요 없는 불안감이나 공포심은 떨쳐내야 한다고 말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경험을 그대로 묘사하기 때문에 수용하기 쉽고,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탄탄한 신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본인이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선정적인 표현을 되도록 줄일 필요가 있다. 셋째, 비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라. 이를테면 전쟁터에서 쓰는 용어들은 개인끼리는 부디 자제해야 한다. ‘어디가 뚫렸다’든가 ‘전면전’ 등등 평소 때에는 그러려니 하는 표현도 요즘 같은 때는 상당히 자극적이고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표현들이다. 언론도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종을 잡고 빨리 보도하는 것은 이들의 특권이지만, 신나고 즐기는데도 삼가야 할 상황은 분명히 있다.

 사스에 이어서 이번에는 메르스다. 불행히도 메르스가 끝일 것 같지도 않다. 앞으로도 자주, 어쩌면 일상이 될 수 있는 재난이다. 이럴 때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오보 속에 불안과 공포로 떨지 말고, 신이 준 언어능력으로 슬기롭게 소통할 방법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절실한 방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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