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59 (금)
건설업체 오너가 남긴 메모
건설업체 오너가 남긴 메모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5.06.07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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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면 검찰의 1차 타깃은 건설업계가 됐다. 정권에 밉보였다거나 당국의 잣대가 잘못이란 해명 등 억울한 구석도 있겠지만 털면 털리는 게 건설업체였다.

 4월 9일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주머니에서 메모 한 장이 나왔다. 그 어떤 드라마 작가도 상상하지 못한 충격적이고,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전개됐다.

 건설업을 하면 평소 이곳저곳을 들락거린다. 돈이 얼마인지 가리지 않고 싱글벙글이며 스폰서도 자청한다. 물론, 공사(公私)구분도 없다. 급성장도 다반사지만 추락도 잦다. 그게 건설업체며 정경유착의 바로미터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또 밉보이는 순간 건설사는 그날로 문을 닫든지, 딴 일을 찾아야 하는 것도 불문율이고 대부분 단명(短命)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경남에는 걸출한 3개의 건설업체가 존재했다. 이들 업체는 스크랩을 짜고 아파트 부지를 독식, 분양 때면 돈을 가마니에 쓸어 담았다고 할 정도였다. 이를 기반으로 상경했지만 결과는 쪽박만 차고 철장 신세였다. 한 업체는 절대 권력자와 가까웠다는 것, 또 다른 업체는 황태자의 후원 등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결론은 정권을 넘나들었을 뿐 배임, 횡령 등 건설업계에서 관행처럼 돼 있는 죄목이 하나 더 추가됐다는 사실이다.

 이 틈새를 비집고 부산에서 날아든 존재도 미미한 모 업체는 아파트분양 몇 탕에 반열에 올랐지만 경남에서 먹고 틴 꼴이나 진배없다. 창원 아파트 분양을 기반으로 해 서울 부산에서 제법 큰 업체 노릇을 한다지만 분양아파트의 조경부실 등으로 목덜미를 잡히는 등 나쁜 꼬리표는 달고 다닌다. 이에다 오너의 이미지는 바닥이어서 휴화산이란 게 업계에서 나도는 얘기다. 또 현재 경남건설업계의 신실세로 등장한 업체도 아파트 분양으로 급성장했다.

 그렇다면 아파트건축이 황금알을 낳는다는 것은 분양률을 따져봐야겠지만 사실에 가깝고 실제 공동주택 부지 평당 2천만 원짜리 땅은 20층일 경우, 단돈 50만 원이란 계산이다. 이에 평당 건축비를 합산한 게 분양가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이 대선 출마 때 반값아파트 공급주장이 허언(虛言)이 아닌, 사실에 가깝다. 이런데도 분양가의 고공행진이 이어진다면 가격은 통제돼야 한다. 또 다른 부의 창출은 관급공사다.

 관이 발주하는 공사를 낙찰받느냐가 건설업체의 능력(?)이고 대표적 정경유착이다. 실제 125개 현장에 대한 특정감사 결과, 14곳에서 부조리함을 적발 한 바 있다. 하동도로공사는 12년 동안 30차례의 설계변경을, 김해도로공사는 9년 동안 113억 원의 공사비가 증가토록 한 것이다. 설계 변경의 원인은 물가상승, 민원해소, 부실설계 등이지만 이게 부패의 온상이란 사실이다. 이 같은 현장에서 줄을 잘못 섰던지, 누구에게 미운털이 박혔든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3인방은 쓸쓸하게 퇴장한 게 분명하다.

 특히 ‘충청 커넥션’의 실체로 불리는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도 현장을 떠났다. 좋게 보는 쪽은 ‘추진력이 대단한 사나이’로 ‘의지가 강한 사람이 오죽하면 그랬을까’한 평가인 반면, 비판적으로 보는 쪽은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사람’이란다. 로비의 힘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봤겠지만 그렇게 믿은 인맥에서 모든 게 막히니까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는 게 업계의 후문이다. 그가 남긴 메모(memo)란 게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하거나 자신의 기억을 돕기 위해 짤막하게 글로 남긴 것이지만 짧아도 너무 짧았다. 오해와 억측만 남긴 것에서 억울하다는 호소의 울림보다 건설업계의 치부만 드러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재계 서열 20위권으로 급성장한 부영그룹, 1983년 설립돼 이제 갓 30년이 지난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대기업집단으로 우뚝 섰다. 한때 국내 임대주택의 80%를 짓고 정부 지원금의 절반가량을 독식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DJ, MB정권 때 정경유착이란 꼬리표에다 2004년에 터진 부영게이트는 호남실세들이 줄줄이 거론됐지만 사실유무는 드러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 어느 건설회사 오너가 나서지 않겠는가. 하지만 경남건설 업계의 3인방이 사라지듯, 부산에서는 그야말로 정치권을 좌지우지했다는 D건설이, 대구경북의 A, B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상황에도 정권에 줄을 대려는 건설업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은 정치자금 진원지 못지않게 한탕이 한결 쉬운 건설업계의 특성에서다.

 아무튼, 누가 권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택했지만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하다면 구조와 환경을 바꾸는 게 옳다. 이 문제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제2, 제3의 사건은 이어질 것이다. 문득, 노(老)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무하고나 연(緣)을 맺지 말라, 업보를 짊어지기 십상이다”라고 한 말씀이, 꼭 건설업계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으로 지목한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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