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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자시대의 도래
새 문자시대의 도래
  • 김혜란
  • 승인 2015.06.04 0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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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ㆍ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바야흐로 새로운 문자시대가 온 것 같다. 두루마리 종이를 펼쳐놓고 먹 갈고 붓 들어서 일필휘지로 마음을 전하는 문자가 아니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지능을 가진 손 안의 컴퓨터, 핸드폰으로 일상의 대화나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용히 ‘문자질’로 해버리는 신 문자시대가 온 것이다.

 그동안 한국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마음껏 통화하고 살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옆자리 앉은 사람의 사생활을 꽤 많이 알 수 있었고, KTX를 타도 회사 기밀을 큰 소리로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다. 몇 년 사이 사람들이 통화보다 문자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확실하다. 음성을 들으며 통화하는 경우가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문자로 뭔가 물어 와서 전화를 걸면 당황하는 사람도 만난다. 문자로 물었는데 문자로 대답하면 되지 전화는 왜 했냐는 반응이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내용을 전하고 간단한 답을 바로 듣고 싶을 때는 문자가 편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반면에 설득하거나 설명할 때는 분명히 음성통화가 낫다.

 새로운 문자시대는 새로운 스타일의 오해를 낫기도 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학생이 보낸 문자에 답문을 보냈는데 곧바로 그 학생이 전화를 걸어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뭣 때문에 기분이 상하셨는지요?” 전혀 기분 상한 일이 없었던 교수는 어리둥절해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모티콘 하나 없이 그냥 ‘~습니다’ 체로 보낸 문자 때문이었다고 한다. 문자를 주고받을 때는 이모티콘을 넣어줘야 일종의 예의범절을 갖춘 글이라는 것이다.

 대학교 신입생들이 쓰는 리포트에도 이모티콘이 꽤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이모티콘이 정식 어휘로 채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자언어가 그런 것처럼 문화마다 이모티콘에도 표현의 차이가 있다. 웃는 표정 이모티콘의 경우, 서양은 입 모양을 ‘:)’로 표현하지만 일본이나 중국, 한국의 경우는 눈 모양 ‘^^’을 쓴다.

 사람은 소통할 때 감정표현이 중요하다. 감정표현은 말이나 글의 모세혈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할 때 상대방의 보디랭귀지까지 제대로 읽지 않으면 중요한 협상의 단서를 놓치기도 하고, 말의 내용보다 표정이나 몸동작이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효과가 더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만나서 대화를 하면 입을 통해 말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말하는 내용도 같이 파악된다. 미소와 눈 깜빡임, 찡그림, 시선, 호흡과 목소리, 동공의 크기, 몸의 방향, 손동작, 발의 움직임 등으로 감정을 읽는다.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하면 다양한 감정을 파악할 수 있지만 문자로만 전할 때는 그 말을 할 때의 감정을 모르거나 읽는 사람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 좁혀서 말한다면, 새로운 문자시대에는 이모티콘을 장착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인간은 영리한 동물이다.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인 ‘문자질’을 선호하면서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놓치고 싶지 않은 본능이 최소한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이모티콘을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언제부터 스마트폰으로 ‘문자질’을 했고 감정표현을 이모티콘으로 하고 살았던가 싶다. 꾹꾹 눌러쓴 글씨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자판이 아니라 직접 필기도구로 쓴 글씨가 가진 감정 전달의 힘은 유효하다. 가끔 감정 표현이 여의치 않을 때는 스마트폰으로 하는 ‘문자질’을 멈추고 편지를 쓰면 어떨까.

 아주 솔직하게 써야 한다. ‘내가 감정 표현이 잘 안 돼서 글을 쓰는데, 어쩌고저쩌고…’ 그래도 안 되면 다시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치면 된다. ‘우리 만나서 이야기할까?’

 소통 가능한 다양한 방법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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