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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玉璽(국옥새)
國玉璽(국옥새)
  • 송종복
  • 승인 2015.05.20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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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國:국 - 나라 玉:옥 - 구슬 璽:새 - 도장

 옥새는 원래 거북[龜]형으로 중국이 제작해 전수해 왔는데, 대한제국 때부터 용(龍)모양으로 자체 제작했다. 이는 국가 및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외교문서나 훈장에 사용한다.

 속담에 ‘돈은 빌려줘도 도장은 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장(도장)은 큰 권위와 신뢰를 상징한다. 이집트 파라오는 ‘요셉’을 고관직에 상응하는 ‘인장반지’를 끼워 주었고, 1959년 영화 ‘벤허’의 로마사령관 아리우스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유다 벤허’를 양자로 삼으면서 ‘인장반지’를 끼워 줬다. 인장이란 중국 한나라 때 하급관리의 관인을 인(印), 고위관리의 관인을 장(章)이라 부른 데서 인장(印章)이라 했다.

 국옥새(인장)를 일명 국새(國璽)ㆍ옥새(玉璽)ㆍ어새(御璽)ㆍ어보(御寶)ㆍ새(璽)ㆍ보(寶) 등 다양하게 부른다. 진시황이 전국새(傳國璽)를 제작함으로써 새가 보보다 높은 품계로 일컫게 되어, 옥새> 국새> 보> 인으로 됐다. 그 후 당의 측천무후는 ‘새(璽)자 발음이 사(死)자 발음과 닮았다’ 해 새를 보라고 한 적이 있다. 옥새란 국권과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중국과 일본은 그 명맥이 끊겼지만, 우리는 그대로 전수되어 지금은 ‘대한민국’이란 국새로 훈장이나 외교문서에 사용하고 있다. 원래는 거북[龜]형이나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용(龍) 모양으로 바꾸었다.

 ‘국새(옥새)’의 처음 사용은 1370년 고려 공민왕 때부터다. 국새는 국권(왕권)이다.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할 때 성삼문이 눈물만 흘리며 옥새를 건네주지 않자 세조가 순간 도끼눈으로 노려봤고 1910년 일한합방(경술국치) 때 윤덕영이 옥새를 가지러 왔을 때 순정효황후(윤씨)가 옥새를 넘기지 않으려 치마폭에 감췄다는 것을 보면, 옥새가 바로 국가를 의미한 것이다. 이 옥새는 도승지의 책임 아래 상서원(尙瑞院)에서 관리했다. 즉 외교 및 국내문서에, 왕위계승 때는 전국(傳國)의 징표에, 국왕의 행차 시 봉송에 사용됐다.

 2006년 개봉한 영화 ‘한반도’에 ‘옥새는 황제의 것이며, 국새는 국민의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이다. 즉 고종황제 때 만든 옥새를 ‘대한국새(大韓國璽)’라 했고 지금 정부의 국새자료집에 국새는 ‘국사에 사용되는 관인으로서 나라의 중요문서에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된다’고 기록하고 있어 국새로 불러야 한다. 대한제국 옥새는 2013년 11월 미국에서 발견됐다. 이는 6ㆍ25전쟁 때 미군이 궁궐에서 가져간 것으로, 작년 4월에 오바마 대통령께서 방한할 때 옥새(玉璽)를 돌려받았다. 일제치하 35년 동안 국새도 없던 것을 1948년 정부수립과 동시 국새제도가 마련됐다. 이어 1949년 5월에 ‘대한민국지새’가 제작됐고 1970년 3월에 다시 한글 전서체(篆書體) ‘대한민국’으로 제작했으니 적어도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국새로 찍힌 표창정도는 하나쯤 받을 수 있는 애국심을 길러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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