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8:57 (토)
엄마의 용기
엄마의 용기
  • 김혜란
  • 승인 2015.05.20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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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ㆍ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얼마 전 초등학교 여자아이가 쓴 동시가 화제가 됐다. 이른바 ‘잔혹동시’라고 알려진 ‘학원 가기 싫은 날’이란 시이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 이렇게 / 엄마를 씹어 먹어 / 삶아 먹고 구워 먹어 / 눈깔을 파먹어 / 이빨을 다 뽑아 버려’라는 구절을 비롯해 잔인한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피가 낭자한 상태로 누운 누군가와 함께 입 주변이 피로 물든 채 앉아 있는 여자를 그린 그림도 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 독일의 그림형제에 비견하는 천재성이 돋보인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평가는 표현이 너무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같은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엄마에 대해 그렇게까지 심하게 적의를 표현한 것에 충격받았고 각종 인터넷 기사 밑에 달린 댓글에서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 아이들에게 더 놀란다고 했다. 또한 자녀에게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문의를 하기도 했다.

 보통 아이들은 학원에 가기 싫으면 학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시 속의 주인공은 적의의 대상을 정확히 엄마로 조준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학원을 없애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나이다. 그러니 늘 학원에 가라고 명령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도가 넘는 표현은 문제라는 견해가 많다.

 일단 부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이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부터 해야 한다. 이미 발생했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는 이런 시는 자녀들이 보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고 자신의 자녀는 순진해서 이런 생각은 절대 못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귀 막고 눈 막고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면 그것이 더 문제다.

 몇 년 사이 사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 마음이 특히 엄마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자녀를 힘들게 하고 싶은 엄마는 없다. 자신의 자녀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허리띠 졸라매면서 남들 보내는 학원에 역시 경쟁하듯 보낸다. 아이 적성에 상관없이 모든 교과목에 예체능까지 잘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만족은 쉽지 않다. 더 촘촘하게 구속하고 훈련하고 아이들은 지치고 도망치고 싶어 한다. 계속적인 악순환이다. 그래서 문제는 그 아이의 생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 어른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동조하는 우리 아이에게 나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준 것은 아닌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아이를 바꿀 것이 아니라 부모의 생각을 먼저 바꿔야 한다. 아무리 많은 학원에 다니고 공부를 많이 한 자녀도, 손안에 있는 핸드폰에 들어있는 지식보다 더 많이 알 수 없는 시대다. 그러니 자녀가 원하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적성에 맞는 일을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함께 찾아보는 작업이 더 우선이고 절실하다.

 잔인한 것은 아이들이나 시가 아니라 잔인한 세상을 만들어놓고 순진하기를 바라는 어른들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더욱이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런 환경을 만든 것은 어른이고 부모라는 사실이다. 두말할 것 없이 교육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바꿔야 한다.

 어쩌면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힘든 부모가 더 많을 것 같다. 그래서 변화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학만 해도 이제 누구라도 다 갈 수 있을 정도로 경쟁률이 낮아졌다. 명문대를 나와도 답이 없는 시대인 것을 두 눈 뜨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명문대가 아니라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 오히려 답이 될 것이고 아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나무라거나 화내지 말고 아이들의 든든한 뒷배가 돼 줘야 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대다. 변화하려는 부모의 용기가 먼저다. 아니, 엄마의 용기가 무조건 필요하다. 힘든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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