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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 놓인 영혼의 물길
부부 사이에 놓인 영혼의 물길
  • 박종훈
  • 승인 2015.05.19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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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훈 경상남도교육감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에 구속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두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연인이든 부부든 두 사람의 영혼은 충돌하지 않을 만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영혼이 만나 화학적으로 화합하는 것이 사랑의 극치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차피 개체적 존재임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사랑에 대한 지혜가 엿보인다.

 모든 관계에는 거리가 있다. 밀착된 감정의 거리에서 감정을 자제한 관조의 거리, 객관적 관찰의 거리에 이르기까지 그 거리는 친소에 따라 달라진다. 가족 사이의 정서적 거리는 가깝고 사회적 관계에서는 거리가 비교적 멀다. 그렇다면 부부의 거리는 어느 정도쯤이 적당할까? 부부는 엄밀히 말해 사회적 관계다. 혈연도 아니면서 혈연으로 구성되는 가족의 기본 단위를 이룬다. 이 오묘한 관계는 실로 신비롭기조차 하다.

 남녀가 짝을 이루는 일은 운명적이든 누구의 중매로 맺어진 것이든 만남에서 출발한다. 이 만남에서 정념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생물적 이끌림이라 할 수 있다. 만나야 할 까닭이 전혀 없는데, 두 사람이 정념의 불꽃을 반짝이는 것은 정말 우연이다. 하필이면 그 두 사람이 만난 것이다. 생물의 탄생을 필연적 우연에서 찾는 자크 모노처럼, 연인과 부부의 인연도 우연한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수백 생의 인연이 닿은 끝에 마침내 부부로 맺어졌다는 그 신비를 믿는지도 모르겠다. 별과 별이 스치며 반짝이는 섬광처럼 이 운명적 만남은 신비롭게도 현실로 나타난다. 꽃피듯 아이들이 태어나고 새 가족이 아름다운 화원을 이루고 있으니까.

 그런데 갈라서는 부부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서구 사회를 앞지르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만남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부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정념이 불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남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정념만 소중히 여기는 어리석음이 파탄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부에게 애정만 가치로운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개체임을 인정하는 인식, 공유에 앞서 공감할 줄 아는 여유, 동반자로서의 배려심 같은 성숙한 태도를 아울러 갖춰야 그 정념도 오래 가꿔갈 수 있다. 이해와 배려는 사념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운 감정이다. 함께 슬퍼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슬픔을 이길 힘도 나눠 줄 줄 알아야 한다. 거리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거리를 조절하는 힘은 사랑에서 우러나온다.

 우리 부부도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잘 다니고 있던 학교를 뛰쳐나와 교육위원이 되고 다시 교육감이 되겠다고 나선 나에게서 아내가 겪었을 갈등과 고통은 무척 컸을 것이다. 15대 교육감 선거에서 낙선한 뒤, 나는 정말 열심히 뛰었고 표도 많이 얻었기 때문에 떨어지고서도 그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절망은 곧 찾아왔다. 빚잔치를 하고 시골에 오두막을 하나 지어 들어갔다. 이삿날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둘만 남았을 때, 그 고적함 속에서 비로소 낙선의 비애가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하필이면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라, 덩그러니 남은 두 사람 사이에는 빗소리만 세차게 들렸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내뱉기만 하면 그만 울음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아 이를 물고 비 내리는 창밖만 바라보았다. 눈시울을 적시는 눈물을 비 탓으로 돌리고 있을 때, 아내가 다가와 말했다. 이제 딱 한 번만 더 도전해 보고 그 다음에는 깨끗이 잊고 살자고 말을 건넸다. 그 말에 나는 절망의 울타리를 넘을 수 있었다. 몇 해 동안 정말 열심히 뛰었다. 적어도 후회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온 정성을 다해 일했다. 그 날 아내가 거리를 좁히며 나에게 다가온 덕분에 얻은 힘 때문이었다.

 부부는 저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일을 하는 자유인이다. 한 영혼이 다른 영혼을 포섭할 수는 없다. 영혼과 영혼 사이에는 가로놓인 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물은 일렁인다. 일렁이는 그 물결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 격랑이 될 수도 있고 잔잔한 물결이 넘실거릴 수도 있다. 그 물결의 파장이 다가갈 마음이다. 그 마음은 말의 파동에 실려 물결친다. 정념의 말, 애정의 말, 위안의 말, 격려의 말이 부부의 바다를 아름답게 출렁거리게 한다. 침묵의 믿음이 바다의 평화를 가꾼다. 멀고 가까운 거리를 만들어 가는 지혜가 바다에 생명감을 불어넣는다. 오늘은 함께 그 바다에 배를 띄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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