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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ㆍ거제시장과 ‘경로의존성’
김해ㆍ거제시장과 ‘경로의존성’
  • 박춘국
  • 승인 2015.05.14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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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국의 이 생각 저 생각
 경남지역 가운데 퇴임한 민선시장이 모두 뇌물수수로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 신세를 진 곳이 있다. 김해시와 거제시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경로의존성’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우리는 항상 변화와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새로운 것들에 목말라 하지만 실제로는 습관적이며 무의식적으로 대부분의 일들을 처리하며 살아간다. 어떤 일에 익숙해지면 그 반복적인 과정에서 그 일이 몸에 배게 되고 그것이 주는 편안함과 익숙함이 일종의 관성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경로의존성’이라고 한다.

 정치학대사전은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 徑路依存性)’에 대해 ‘법률이나 제도, 관습, 문화,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는 한번 형성돼 버리면 그 후 외부로부터의 다양한 쇼크에 의해 형성 시에 존재한 환경이나 여러 조건이 변경됐음에도 불구하고 종래부터의 내용이나 형태가 그대로 존속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과거의 선택이 관성(inertia) 때문에 쉽게 변화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로의존성’에서 자주 인용되는 예는 영문 타자기의 키 배열이다. 오늘날에도 표준적인 키 배열은 좌측 상단에 QWERTY로 배열돼 있지만 이것은 타자기가 수동이었던 시대에 활자를 치는 기계의 팔이 뒤엉키지 않게 타이핑의 속도를 일부러 늦추도록 설계된 것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해 전동 타입이 주류를 이뤘던 시대 보다 효율적인 키 배열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오랫동안 익숙하고 친숙한 배열을 바꿔 새로운 키 배열을 보급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QWER

TY라는 배열은 그 비효율성이 인지되면서도 현대까지 남아 있으며 이것이 ‘경로의존성’의 고전적인 예로서 다뤄지고 있다. 이미 건설된 도로의 차선폭이 자동차의 차폭을 결정짓거나 철도 레일의 간격이 운송화물의 크기를 제한하는 것도 ‘경로의존성’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민선 1대~3대까지 김해시장실을 지킨 송은복 전 시장은 2006년 3월 한나라당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0억 원을 받은 혐의로 퇴임 후인 2009년 2월 기소됐고 법원은 징역 1년에 추징금 10억 원을 선고했다. 김종간 전 시장(민선 4기)도 임기를 마친 뒤인 2012년 9월에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 된 뒤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아직까지 대법원 최종심이 남았지만 민선 5~6대 김맹곤 시장도 지난 11일 열린 항소심 최종 공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선고가 끝난 뒤 민심이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거제시의 경우 조상도 민선 초대 시장은 지난 2001년 거제시 장목면 일대 석산개발 골재채취 허가 과정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대 양정식 전 시장도 2002년에 칠천도 연륙교 건설공사와 관련해 시공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3~4대 김한겸 전 시장은 퇴임 후 임천공업 공유수면 매립 인허가 등과 관련해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현금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감형을 받아 출소했다.

 임기를 마친 김해시장과 거제시장이 모두 뇌물수수로 실형을 받은 것이 ‘경로의존성’으로 고착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재까지는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양시의 시민들에게 희망은 있다. 김해시의 경우 김맹곤 시장이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유예란 꼬리표가 달렸고 상고심이 남아있다. 또 역대 시장과는 달리 죄명이 뇌물수수가 아닌 선거법 위반이다.

 희망의 강도가 더 큰 쪽은 거제시다. 임기 5년을 넘긴 민선 5~6대 권민호 시장은 아직까지는 법적인 하자가 없다. 권 시장은 뇌물수수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인물로 평가되면서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퇴임 후에도 무탈할 것이란 밝은 전망이다.

 지금까지 퇴임한 김해시장과 거제시장들이 지역원로가 되지 못하고 하나같이 법의 심판대에 올라 교도소 신세를 진 일은 당사자는 두말할 것도 없지만 해당 시민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전직 시장들의 퇴임 후 교도소행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자칫 그간의 결과가 ‘경로의존성’에 의해 바꿀 수 없는 선택으로 굳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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