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1:28 (목)
봄을 보내는 방식
봄을 보내는 방식
  • 김금옥
  • 승인 2015.05.13 21: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금옥 김해삼계중학교 교장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어머니는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밭을 가지고 계신다. 봄이 되면 파 모종을 비롯해 한 해 먹을 야채를 위해 여러 모종을 사서 심고, 겨우내 벽에 매달아 두었던 씨앗을 뿌리기도 한다. 밭에서 돌아오는 해거름에는 냉이나 달래 그리고 민들레 등을 손에 들고 오시곤 했다. 계절이 키워낸 봄의 선물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이다. 어머니는 냉이 된장국을 끓이고 민들레 겉절이를 올린 봄의 식탁에 가족을 초대하시곤 했다.

 최근에는 거의 매일 몇 줌씩 쑥을 뜯어 오시던 어머니가 그것들을 모아 쑥떡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셨다. 먹어보니 깊은 맛이 있어, 조금 싸서 친구에게 가져다주었다. 감기가 나가지 않아 시들시들하던 친구였는데, 어머니가 만들어준 쑥떡을 먹었더니 입맛이 돌아오고 기운이 회복된 것 같다고 보약이었다며 일부러 전화를 해왔다. 게다가 어릴 때 친구들끼리 뭉쳐 다니며 지천에 널린 쑥이나 할미꽃 캐던 이야기를 서로 즐겁게 나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지면서 나도 쑥을 캐보고 싶어졌다. 더 많이 사람들에게 봄의 기운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챙이 넓은 모자를 찾아 끈을 조여 매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쑥은 지천이었다. 쑥은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건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공원이나 아파트 잔디밭은 물론 보도블록 틈새에서조차 잘도 자라는 잡초 중의 잡초였다. 하기야 오죽하면 ‘쑥쑥 큰다’는 표현이 만들어졌을까. 도착한 밭의 언저리에는 쑥이 우거져 그야말로 ‘쑥대밭’이 돼 있었다. 농약을 치지 않은 깨끗한 땅만을 골라 쑥을 캐고 또 캐고 또 캐니, 저녁때쯤 두 바구니가 넘쳐났다. 쑥에서 티를 가려내고, 끓는 물에 쑥을 데치고, 찹쌀을 씻어 담그고,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할 때 따끈따끈한 떡을 차에 싣고 갔다.

 봉사활동을 위해 학교를 방문하신 한 학부형이 가야문화축제에 행사가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구경 오라고 권했다. 어떤 행사인지 물으니,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에게 차를 올리는 행사라고 했다. 그녀는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역사상 최초로 국제결혼을 했는데, 혼례 시 가져온 봉차를 이곳 김해에 시배해 장군차의 시조가 됐다고 한다. 먼 곳으로부터 차를 전해주었던 그 마음을 기리어 헌다례를 올리는 행사 준비에 김해가야다회의 회장인 그 학부형도 참여하고 있노라 했다.

 5월의 한낮은 햇살이 강한 편이었다. 허왕비의 동상이 있는 수릉원 앞에는 전국에서 모인 다회의 회원들이 따가운 햇살 아래서도 한복 차림의 고운 자태로 헌다례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잔의 차를 위해, 곱게 성장(盛粧)을 한 다회 회원들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헌다례 행사와 함께 그 옆 숲속에서는 백일장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참가가 가능했는데, 숲 속에는 나무가 우거진 그늘을 골라 돗자리를 깔고 코끝에 안경을 걸치고 글을 쓰는 할머니도 보이고, 작은 밥상까지 들고나와 글을 쓰는 소녀도 보였는데 종이 위를 지웠다가 다시 쓰고 다시 쓰는 모습에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필자도 한번 참여해 볼까해 원고지를 받았다가 시작도 못하고 끝이 났지만, 이런 계절에 이런 나무숲에서 시나 산문을 쓰면 아이건 어른이건 세월이 가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봄도 없이 여름을 맞이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왠지 봄을 제대로 느끼고 지나가는 것 같다. 한해도 빠지지 않고 인간을 위해 봄의 선물을 기꺼이 내줬던 계절에게 감사한다. 해마다 봄의 향기 가득한 식탁을 차려준 어머니께도 감사한다. 인도에서 차를 전해준 인도의 공주에게도, 그 공주에게 한 잔의 차를 바치고 싶어서 그렇게 땡볕 아래서 정성을 다하던 봄의 여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도 감사한다. 게으른 필자가 연휴에 부지런을 떨며 햇살 아래 얼굴이 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쑥을 캐고 싶었던 마음이 생긴 것도 감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일 매일 학생들을 위해 수고와 열정을 아끼지 않는 우리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한다. 오월의 봄이 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