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30 (토)
배려 원하는 사회
배려 원하는 사회
  • 김혜란
  • 승인 2015.05.13 2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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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ㆍ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국민과자 광고문구가 있다.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과자시장을 석권한 제품이기도 하고 광고문구 역시 이십 년 넘게 쓰다가 최근 몇 년 사이 확 바뀌었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국민과자 광고 콘셉트가 바뀐 것은 세태변화를 읽은 일이기도 하고 낭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계산을 한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광고를 처음 만났을 때, 인간적이고 정이 넘치는 느낌이었고 낭만까지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소박해서 더 현실(?) 같은 이 광고 문구를 삶에 적용해 보니 전혀 소박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이런 말을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주 할 수 있다. “야, 말하지 않는다고 그걸 모르냐? 너랑 나랑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정말 말로 표현해야 할 일을 태도나 행동, 분위기를 통해 자기주장을 한다. 화난 표시를 하기 위해 문을 큰 소리를 내며 닫는다든지, 불만이 있다는 표현을 위해 평소와는 다르게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의사소통의 기본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봐야 한다.

 사실 아무리 긴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더라도 말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채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의사소통에 오류를 가져오는 일이 태반이다. 특히 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말로 요청해야 한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은 절대로 받을 수 없다.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상대방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 그 사람이 꼭 해 줘야 하는 의무는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먼저 알고 배려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내 생각은 남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분명한 언어를 선택해 그 뜻을 되도록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주장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 자기주장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다소 센(?) 인간이라는 판단만 감수하면 다른 문제는 없다.

 문제는 말로 하지 않고 태도나 행동, 분위기를 통해 자신 생각을 이해시키려는 경우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모르거나 잘못 받아들이는 일이 생긴다. 그런 경우 결국은 화를 내고 자신생각을 설득하려고 공격적이 되거나 일단 자신 주장을 거두지만 속으로는 앙심을 품기도 한다.

 말하기 전에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는 것이 센스감각이 뛰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주장하지 않는 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장하지 않아도 알아줘야 하고 부탁하지 않아도 뭔가를 해주길 바라는지 알아야 괜찮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그것을 흔히 ‘배려’라고 부른다. 이럴 때도 ‘배려’하기는 정말 어렵다. 잘 되면 괜찮지만 안될 경우는 불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배려는 사람사이에 위아래가 있는 관계 구도를 만들기도 한다. 상대방을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보거나 부탁조차 못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을 수도 있다. 또 상대방의 삶을 참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상대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끼어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온통 자신 외에는 배려를 못해서 문제가 많다고 한다. 나 아닌 사람을 배려하자고 외친다. 이런 현상은 뒤집어 보면 내가 아닌 상대방이 나를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일이다. 나 말고 네가 먼저 나를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려는 선택사항이지 의무나 책임이 아니다. 배려는 손 벌려서 나올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지금부터는 원하는 일이 있으면 그냥 당당하게 말로 요구하고, 주장할 일은 겸손한 표현으로 주장하며 살자. 그것이 자존심도 서고 시간도 줄이고 오해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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