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9:04 (토)
흥부 고향 남원의 성산ㆍ성리
흥부 고향 남원의 성산ㆍ성리
  • 송종복
  • 승인 2015.05.11 2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육각수 노래에 ‘흥부가 기가막혀 흥부가 기가막혀/ 아이구 성님 동상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오/ 이 엄동설한에 어느 곳으로 가면 산단 말이요 갈 곳을 일러주오./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 주려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아따 이놈아 내가 니 갈 곳까지 일려주냐 잔소리 말고 썩 꺼져라./ (중략) 해지는 겨울들녘 스며드는 바람에 초라한 내 몸 하나 둘 곳 어데요 어디로, 아 이제 난 어디로 가나 이제 떠나가는 지금’이라고 한 지명이 밝혀지고 있다.

 고대 소설로만 알고 있는 흥부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의 출생지는 전북 남원시 ‘성산마을’이고 그가 형 놀부한테서 쫓겨나와 유랑 끝에 정착한 곳이 전북 장수군 번암면 ‘성리마을’이라고 한다. 이 성리마을을 복덕촌(福德村)이라고 하는데, 남원시와 인접한 번암면 복성리(福星里)로 비정하고 있다. 흥부가 그곳에서 살다가 고승(高僧)으로부터 새 집터를 얻어 정착한 곳으로 본다.

 이로 보아 동면 성산리와 아영면 성리가 흥부와 관련된 마을이라고 한다, 따라서 ‘성산리’는 흥부의 출생지로 ‘성리’는 흥부의 정착지로 본다. 성산리는 남원과 함양을 잇는 팔령치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흥부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연비봉(燕飛峰), 화초장(花草匠)바위, 흥부네 텃밭, 연하(燕下)다리 등이 많은 것도 무관하지는 않다고 본다.

 ‘흥부전’의 작자 연대는 미상이나 전북 남원에는 오래전부터 흥부전과 같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었다. 즉, 이곳에는 선덕가(善德家)인 ‘춘보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또 이를 기리는 축제가 행해지고 있으며 매년 정월 보름에는 흥부를 기리는 흥부제사도 지내고 있다. 가난 끝에 부자가 돼 정착한 곳이 바로 전북 장수군 번암면 복성리라고 해 흥부가 살던 곳이라 한다.

 이 성리마을에는 박춘보(朴春甫)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고 ‘흥부가’와 ‘춘보설화’에 선덕을 베푸는 내용이 유사해, 흥부가 살던 마을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인 허기재ㆍ고둔터ㆍ새금모퉁이ㆍ흰죽배미 등이 곳곳에 나온다.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이며, 또한 ‘고둔터’란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高僧이 집터로 잡아 준 명당인데, 흥부가 이곳에서 제비 발을 고쳐 복을 받아 ‘발복집터’라고 한다.

 또 ‘새금 모퉁이’는 사금(砂金)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아마 이곳에서 금을 주워 부자가 된 것으로 추측한다. 한편, ‘흰죽배미’란 흥부아내가 이웃의 흰죽을 얻어먹고 살아나서 ‘흰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논을 ‘베미’ 또는 ‘도가리’라고 하는데 이는 흥부가 부자가 돼 이웃 은인들에게 보답으로 논을 주었다는 것에서 전한다고 한다.

 전북 남원시는 흥부전을 토대로 해 흥부가족이 쫓겨가다 허기져 쓰러진 고개 길을 ‘흥부가 부자 되러 가는 길’이라고 해 ‘흥부길’로 조성해 관광코스로 단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매년 삼짇날에 박첨지 제사, 정월보름에 박춘보(흥부)제사, 5월에 춘향제사 및 변강쇠의 백장공원과 옹녀쇼를 만드는 등 지역문화발전과 관광자원화를 서두르고 있다하니, 여타 도시도 이와 병행해 전통문화를 기리는 방법을 강구하기 바랄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