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7:21 (금)
映山紅(영산홍)
映山紅(영산홍)
  • 송종복
  • 승인 2015.04.15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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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映:영 - 비치다 山:산 - 뫼 紅:홍 - 붉다

 영산홍 너무 아름다워 중국의 최고 미인 서시(西施)와 같다고 하고, 다른 철쭉은 못생긴 여자의 대표인 모모(□母)와 같다고 했다. 김용임의 노래에, 강릉민요에 영산홍이 나온다.

 영산홍을 일반 사람들은 ‘연산홍’이라고 잘못 아는 분이 허다하다. 색깔에 따라 붉은색은 영산홍(映山紅), 흰색은 영산백(映山白), 주황색은 영산자(映山紫)라고 한다. 김용임의 가요에 ‘영산홍 붉게 핀 언덕기슭 가신님 불러도 대답은 없고 (중략) 영산홍 붉은 꽃잎 하도 고와서 가신님 그리워 눈물 뿌렸소, (중략) 영산홍 붉은 꽃잎 하도 예뻐서 가는 봄 잡고서 혼자 울었소’라 했다.

 또한 강릉지방 5월 단오 민요에도 ‘영산홍로 봄바람에 가지가지 꽃피었네/ 꽃바칠레 꽃바칠레 사월보름 꽃바칠레/ 일 년에 한 번밖에 못 만나는 우리 연분/ 보고파라 가고지고 어서 바삐 가자서라/(후렴) 지화자자 영산홍’이라고 한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세종 23년(1441) 봄, 일본에서 왜철쭉 둬 포기 조공으로 보내왔다. 대궐 안에 심어두고 봤는데, 꽃이 무척 아름다워 중국의 최고 미인 서시(西施)와 같고 다른 철쭉은 못생긴 여자의 대표인 모모(□母)와 같다’고 해 이 꽃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이 철쭉은 일본 ‘만엽집’에 영산홍은 오래전부터 심고 가꿔 온 전통꽃나무라 한다. 에도시대(1603~1867)에 오면서 산철쭉과 따로 구분해 ‘5월의 철쭉’이란 이름으로 사쓰끼철쭉(サツキツツジ)으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은 이 영산홍을 철쭉의 한 종류인 기리시마철쭉, 구루메철쭉 등과 교배해 육종한 것을 사쓰끼철쭉이라고 한다. 따라서 일본은 영산홍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만 ‘영산홍(映山紅)’이라 한다. 영산홍을 가장 좋아한 임금은 연산군이다. 왕은 영산홍 1만 그루를 후원에 심으라 하고 움막을 만들어 추위에 말라 죽는 일이 없도록 했으며 다음 해에는 키운 숫자를 보고하도록 했다. 한편, 광해군 때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영산홍’이 언급되며 숙종 때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도 ‘왜철쭉’이란 기록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다.

 이 꽃은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것으로 꼴 보기 싫어하는데, 실은 일본에 흔한 꽃이지 우리나라 꽃이다. 벚꽃(櫻花)도 원산지가 제주도인데, 일본의 국화로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 건국 당시 진달래를 국화로 정하려다 북한이 먼저 정하는 바람에(지금은 목란) 무궁화로 정했다는 설이 있다. 삼천리금수강산에 봄이면 영산홍으로 가을이면 무궁화로 꽃단장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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