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6:35 (토)
식물 세계와 정보
식물 세계와 정보
  • 조성돈
  • 승인 2015.04.08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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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 전 언론인
종 번식하려는 식물과학 신비
대상에 따라 전략 다양한 변화
곤충ㆍ식물ㆍ동물 맞춰 열매 달라

 꽃송이 사이를 부지런히 날아다니던 벌과 나비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숙여 살펴보니 조그만 앵두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다. 앵두나무는 수정을 도와주는 손님에게 제공할 선물에 이어, 종의 전파를 도와줄 또 다른 손님을 위해 또다른 선물을 바삐 준비한다. 그런데 선물의 질이나 크기, 혹은 양을 앵두는 어떻게 계산할까. 과분한 선물은 낭비가 되고 자칫하면 종의 전파에 불리하다. 그렇다고 쩨쩨하게 굴면 손님이 뜸해져 수정과 전파가 곤란해질 수 있다. 따라서 손님의 기호에 따라 적절한 당분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과학자들은 동물들이 사물을 기억ㆍ판단하거나 그와 관련한 정보를 저장하는 데 중추신경과 뇌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식물은? 식물은 동물처럼 뇌나 중추신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성장이나 번식과정을 관찰하노라면 뇌를 가진 동물에 전혀 뒤지지 않는 정보를 어딘가에 저장하고 있으며 그것을 매우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식물들의 생존을 위한 정보량은 동물에 필적한다. 밀은 인간보다 정보량이 더 많다. 즉 설계상 인간보다 더 복잡하다는 뜻이다.

 동물이 뇌를 발달시켜온 이유는 식물과는 다른 적극적인 생존방식, 즉 이동 때문이지만 확실치 않다. 대부분의 식물은 번식과정을 동물의 도움에 의지한다. 그리고 그 동물을 자신이 선택한다. 첫째 꽃을 피울 적에는 수분(受粉)을 도와줄 곤충을 선택한다. 곤충이 선택되면 그 곤충에 맞추어 꽃의 색깔ㆍ크기ㆍ향기의 종류ㆍ유인수단(꿀) 그리고 그 양과 질ㆍ크기 등을 세밀하게 판단한다. 그 모든 과정은 낭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적정선을 유지해야 한다. 여유롭게 설계하는 것은 위험하거나 불리하다. 그리고 꽃을 매달 위치는 매개자의 크기나 기호, 혹은 비행의 편리성 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비용의 효율성을 감안, 날씨에 따라 꽃의 향기나 색깔을 조절해야 하며 새벽ㆍ낮ㆍ밤 등 개화시간과의 관련도 정확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열매를 운반해줄 또 다른 손님을 초청하기 위해 꽃을 피울 적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항들을 정확하고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이번에는 곤충보다 덩치가 큰 동물이 매개자이기 때문에 꽃과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매개자의 몸집이 작다면 과일을 크게 설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너무 작게 만들면 매개자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게 정확해야 한다. 성숙되지 않은 과일을 보호하기 위해 알칼로이드 성분의 독성물질을 합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지나치면 매개자들이 경계하기 때문에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알칼로이드는 종종 어린잎이나 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적용한다.

 그리고 혹시 두 종류의 손님을 만나지 못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종류의 식물들은 꽃이나 열매를 통한 번식 외에도 부차적으로 줄기번식이나 뿌리번식 등 별도의 대책도 강구한다. 가뭄이 들면 생존을 위해서 잎이나 줄기를 스스로 도태시켜야 하는데 이때도 도태할 가지나 잎의 위치 혹은 그 수량에 대한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다. 평소 광합성이 비효율적인 위치의 가지부터 도태시켜 나간다. 도태될 가지와 잎의 양만큼 뿌리의 위치와 양을 동시에 조절해야 한다.(식물은 지상부와 지하부, 즉 뿌리의 양이 동일하다)

 여름철 활발한 동화작용으로 거둬들인 탄소화합물은 생장물질을 재합성해 어딘가에 저장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이 따른다.

 이처럼 식물들은 위험을 피해 움직일 수 없는 취약성 때문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필요로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동물들의 습성이나 기호 등 생존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떻게 그것을 인지하고 기억하며 또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뇌가 없기 때문에 판단주체는 세포단위일 것으로 짐작된다. 유전정보를 담은 세포의 핵일 가능성이 높다. 식물체에서 특이물질이나 특이구조가 관찰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러한 정보들이 세포단위의 핵일 수밖에 없다. 물론 추측일 뿐 근거는 없다. 식물에 대해 과학은 아는 게 너무 없다. 그래서 식물들의 세계는 여전히 신비 속에 감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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