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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忠壇(사충단)
四忠壇(사충단)
  • 송종복
  • 승인 2015.04.08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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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四:사 - 넷 忠:충 - 충성 壇:단 - 뜰

 임진왜란 때 김해에서는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중과부족으로 순절한 송빈 등 4명 충신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이름을 새겨 만든 단을 말한다.

 ‘조선환여승람’의 김해 충신편에 송빈, 이대형, 김득기, 류식 등 네 분의 행장이 있다. 그들은 임란 때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김해부성을 지키다 순절한 공이 있어, 이를 기리기 위해 고종 8년(1871)에 왕명으로 건립한 사충단(四忠壇)이 있다. 사충단은 3번이나 옮겨져 지금은 김해시 동상동 161번지에 산 중턱에 있으며 경남기념물 제99호로 지정됐다.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왜적이 동래성을 함락하고 왜장 구로타 나카마사(黑田長政)는 제3대를 이끌고 김해부성을 공격해오자 부사 서례원은 도망쳤다. 이때 경상 우병사 조대곤도 창원병영에 많은 군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조차 요청 않고 도망갔다. 전란 후 숙종 34년(1708)에 김해부사 이봉상의 발의로 김해부민이 진례면에 ‘송담사’와 ‘송담서원’을 세워 宋ㆍ李ㆍ金 3충신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4월 20일에 향사했다. 그 후 순조 33년(1833)에 표충사(表忠祠)라는 사액을 받았으나,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됐다. 다시 고종 8년(1871)에 왕명으로 ‘사충단’을 설치해 사충신을 향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충단’이 산 중턱으로 이전돼 교통이 불편해져 이들에 대한 충의정신과 호국선양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뜻있는 사람들은 사충단을 대로변이나 연지공원에 이전함이 마땅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해가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절대 필요한 향토사와 존경받을 수 있는 역사인물에 대한 발굴과 보존 및 선양사업에는 너무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다. 문화원은 ‘문화가 역사’라는 본연의 사업을 망각하고 관심도 뜻도 없다. 아니 몰라서 그러는지 능력이 없어 그러는지 타시도의 경우를 참조하기 바란다.

 더구나 조국을 위해 죽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예의가 너무나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한번 반성도 해 봐야 한다. 며칠 전 창원시 남산에 있는 충신 황시헌 서리의 비문을 봤다. 내용인 즉 병자호란(1636) 때 김해부민 300여 명을 대동해 남한산성의 인조임금을 구출하러 가다가 황령산 전투에서 청군의 거센 공격을 받아 몰살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관계되는 김해시의 단체는 이런 사실을 알까. 이 영혼을 위한 ‘병자호란 충혼비’는 생각했을까. 뿐만 아니라 김해부사 선정비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하는 문화 불모지라는 낙인찍히는 시민이 되지 않기 바란다. 비근한 예로 인근의 창원, 양산, 밀양, 창녕, 고성의 사또 선정비를 견문하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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