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0:23 (금)
분노의 질주
분노의 질주
  • 김혜란
  • 승인 2015.04.08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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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ㆍ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차를 몰지 않았던 어느 해, 몇몇 남자 드라이버들의 무용담을 들은 적이 있다. 길 위에서 불의를 만나면 절대로 참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주제였다. 신호위반을 하는 차를 보면 끝까지 추격해서 운전자에게 충고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이 있었다. 차선위반을 하는 차를 용서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자신의 차 앞으로 끼어들면 반드시 응징한다는 생생한 증언도 이어졌다. 어떤 이는 추격할 때 속도를 내다가 속도위반에 걸려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다. 외국영화처럼 멋지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뭔지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차를 직접 몰고 다닌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최근, 십수 년 전의 남성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뭔지 모를 모골이 송연한 느낌의 의미를 깨달았다.

 ‘로드 레이지’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 알게됐다. 다른 차 운전자가 운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앞으로 확 끼어들거나 또는 갑자기 차를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끼어들었다고 막무가내로 승용차를 길가로 밀어붙이는 화물차 기사도 있다. 차창 너머로 욕설을 주고받다 고속도로 한복판에 아예 차를 세우는 운전자도 만난다. 옆 운전자를 혼내주겠다고 차를 이리저리 몰다 큰 사고를 부르기도 한다. 가장 많이 보는 행태가 ‘보복 운전’인데,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끼어들기 했다고 몇 차례씩 차를 가로막다가 추돌사고를 낸다. 심지어는 고속도로에서 차로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방 차량에 삼단봉을 휘두른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로드 레이지’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평상시에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다가도 운전만 하게 되면 자신의 진로를 방해하는 앞이나 옆 운전자에게 거칠고 상스러운 욕을 해대거나, 난폭한 운전습관을 보이는 행위이다. 화가 나면 차에서 내려 길 한가운데에서 싸움을 해대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묘사한 말이기도 한데, 미국에서는 ‘로드 레이지’로 인해 실제로 칼이나 총을 빼 들어 상대방에게 위해를 입히는 사고가 하루에도 수백 건씩 일어난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도 ‘로드 레이지’로 인해 폭력을 당하거나 고속도로 위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의 경우 아무래도 정도가 더 심하다. 심한 욕설과 욕에 해당하는 행위는 당연히 충격이고 위협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보복운전’을 한다면 그것은 범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일 차에 위해를 가해서 차에 문제가 생기면 재물손괴죄, 위협을 가했을 경우에는 폭력죄로 처벌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도대체 왜 이런 ‘로드 레이지’가 갈수록 우리 사회에서 심해지는 것일까. 외국인들도 인정하는 ‘빨리빨리’ 문화의 소산일 것이다. 또한 교통법규를 제대로 지키고 천천히 운전하는 사람보다 교통법규를 어기고라도 빨리 운전하는 사람을 능력자로 생각하는 잘못된 시각도 원인일 것이다.

 하나 더 보태자면, 조절이 안되기 시작하는 우리의 감정상태이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살도록 종용받아왔다. 그런데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때 반드시 행동에 뒤따르는 보상을 생각한다. 아무리 참고 억눌러봤자 보상 따위 없다는 인식이 들 때 폭발하기 시작한다. 체제 전반에 나타나는 갑을 논쟁이 대표적이다. 빈부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출구가 없는 경제악화 등이 참아왔던 감정들을 하나둘 제어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런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가 차를 모는 길 위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사냥 외에는 총기소지 자체가 불법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총기사용이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대한민국 길 위에서 얼마나 많은 총소리가 났을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그때는 ‘보복운전’이 아니라, 총으로 자신의 ‘로드 레이지’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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