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6:14 (토)
경남교육청 봄은 오는가
경남교육청 봄은 오는가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5.04.05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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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남녘인 ‘경남의 봄’은 꽃동네로 변했다. ‘꽃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이며 /꽃들 가득한 4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즐기며/ 두 발 부러트도록 꽃길 걸어 볼랍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이해인의 4월의 시다.

 4월의 향연, ‘꽃의 문’은 열렸다. 남녘 땅 꽃의 고향 경남은 매화, 목련,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벚꽃 등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쁨만으로도 행복한 계절이라지만 경남의 봄은 차갑다. 1일 꽃동네 하동의 봄소식은 꽃의 문이 열렸다는 화개(花開)를 기대했건만 쌍계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교거부였다. 무상급식이 유상급식으로 전환된 첫날이다.

 또 다른 학교에는 솥단지가 걸리는 등 경남교육의 현장은 시끄럽다. 경남교육청의 감사거부가 발단이 돼 경남도와 도내 시군이 무상급식비 지원중단을 선언한 후 무차별적인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충돌은 진영 간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문제는 경남도의 무상급식 지원 중단 이슈가 정책 논쟁이 아니라 점차 이념 갈등, 정쟁(政爭)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잔인한 4월의 전주곡으로 들릴 정도다.

 지난 2일 오후, 창원시에 소재한 경남교육청의 브리핑 룸에 교육현장에 있어야 할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나타났다. 대안학교의 대명사로 불리는 산청 간디학교 학생들이다. ‘정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싫어요’란 피켓 등 18명의 학생들은 저마다의 주장을 피켓에 담아 경남교육청 브리핑 룸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학교는 지리산 자락의 산골 마을인 산청군 신안면에 소재해 차량으로 이동한다 해도 경남교육청까지는 2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먼거리에 위치해 있는 학교다. 문제는 학생들의 기자회견 이 ‘경남교육청’ 개청 후 처음이란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예사롭지 않다.

 경남교육청이 어떤 곳인가. 교육의 수장, 교육에 관한 절대적인 권한을 쥔 교육감이 근무하는 경남교육의 산실이 아닌가. 교육 당국이 학생들의 기자회견을 허(許)하지 않았다면 경남교육청의 브리핑 룸에서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겠느냐는 게 교육관계자의 전언이다.

 사실이라면 경남교육청이 이들 학생의 ‘행동’을 허용했단 말인가. 아니라면 적극 제지했어야 했다. 학생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갈등의 전면에 나선다 해도 학생들을 선도해야 할 교육 당국이 교육 현장에 있어야 할 학생들에까지 급식갈등의 불을 지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평화로운 집회가 간과돼서는 안 된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무상급식)까지 학생들이 나서야 한다면 경남교육청은 여태까지 뭣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무상급식이 절박(切迫)하다 해도 학생들을 갈등의 현장에 접근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인솔 하에 창원으로 소풍 온 날,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다. 하지만 산청 간디학교의 창원소풍도 이례적이란 점에서 곧이곧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또 이들 학생들이 무상급식 갈등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무상급식 갈등은 경남도가 지난 4년간 투입한 3천40억 원의 무상급식비 사용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후 경남교육청이 이를 거부, 단초가 됐다는 점이다.

 이후 경남교육의 현장은 잔인한 4월의 단상인 듯하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이 100년 전,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차라리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는 시 ‘황무지’를 노래한 후 우리는 곧잘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한다. 엘리엇은 1차 세계대전으로 황무지로 변해버린 현상 앞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에 잠든 뿌리가 깨어나길 갈망하며 황무지에 감춰진 희망을 노래했다지만 ‘경남의 봄’은 차갑다.

 또 당나라 시인 동백규는 절세미인 왕소군이 흉노족에게 볼모로 잡혀가 북방에 머물 때의 심정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며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고 노래했다.

 세상이 어수선하면 봄이 왔으되 봄이 아니듯, 급식문제가 이념 갈등과 정쟁(政爭)으로 비화되는 경남의 봄은 먼 거리에 있다. 하지만 4월의 향연은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쁨만으로도 행복한 계절이 아닌가. 좋은 소식이 그리운 계절이기에 ‘경남교육청의 봄’은 어디쯤 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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