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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소통(1) 나는 학생이다
관계와 소통(1) 나는 학생이다
  • 신은희
  • 승인 2015.04.02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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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희 경영학박사/인경연구소장 가야대학교 겸임교수
 “배움에는 조건이 없다”, “나는 학생일 뿐 이었다”, “배움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명이 끝날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라는 말은 중국의 대문호 왕 멍이 지은 책 ‘나는 학생이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어떤 조건에서도 학습할 수 있고, 역경에 처해있을 때가 가장 배우기 좋은 상황이며 ‘학생’은 나의 신분만이 아니고, 나의 세계관이자 인생관이라고도 했다. 이는 필자의 생각과도 매우 일치하는 개념이다. 나도 학생이다.

 감옥에 갇힌 빠삐용도, 무인도를 표류하던 로빈슨도, 토굴에서 수행하던 노승 또한 스스로 학습과 성장을 거듭했거늘, 사회 속에서 서로 다양한 관계와 교류를 통해 삶을 이루는 현대인이야말로 항상 배우기를 두려워 말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 배움의 자세는 바람직한 관계를 맺어 상생의 길로 나가는 소통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가져야 할 태도다.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생존과 성장을 거듭해가는 과정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이전부터 우리는 무의식 또는 의식적으로 학습을 계속하고, 삶이 다할 때까지 그 학습은 계속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육체적으로 쇠약해져 가고 정신적으로 나약해지기도 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돼간다고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처지에서 학습은 지속되고 있다. 다만 그것을 부정하거나 거부, 또는 망각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꼰대’, ‘고집불통’, ‘독불장군’, ‘안하무인’ 같은 표현은 인간관계 속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대상, 한 마디로 ‘꽉 막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만약 자신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자신이 가진 편협한 식견에 갇혀 오만과 불통의 아이콘이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자신의 대명사처럼 여기며 왜곡된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면 불필요한 소외와 낭비가 늘어날 뿐이다. 어쩌면 본인 스스로도 참으로 힘겹고 외로울 터인데, 바라보는 이들은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후배들의 지식과 생각을 무시하고, 자신의 경험에서 축적된 업무기술만을 강요하는 문화가 그렇다. 또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주장을 들으며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들을 보완하고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일방적인 통보이기 일쑤다. 하물며 ‘최고의 학생’들이 모인다고 할 수 있는 학회에서도, 연구자나 발표자들의 의도와 견해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 자신의 학문의 잣대에 기대어 비판부터 하려 하고, 오히려 무시하는 학자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모두들 자신은 선생이고자 한다. 가르치려고 안달이다.

 ‘사고가 개방적이다’, ‘마음이 너그럽다’, ‘이해심이 넓다’ 등은 ‘말이 잘 통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점점 어려워지는 인간관계와 복잡해지는 의사소통, 그 중요성이 더 강해질수록 먼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모는 자식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교수는 학생에게, 사장은 직원에게, 회장은 회원에게, 정치가는 유권자에게 배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게서 배우겠다는 태도를 그만두고 지배하려 한다면, 관계와 소통을 이뤄야 할 대상과의 장벽은 높아만 갈 것이고,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그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서로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학생이다. 우리는 만물을 관장하는 신이 아니며, 진리를 깨달은 부처도 아닌 인간이다. 조금 더 배웠고, 조금 더 가졌다 한들, 신이나 부처가 바라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차이일까? 살아가는 동안 나는 늘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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