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4:12 (토)
또 다른 나를 위한 배려, 믿음
또 다른 나를 위한 배려, 믿음
  • 김혜란
  • 승인 2015.04.01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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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ㆍ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요즘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을 대상으로 감정코칭 시간을 자주 갖는다. 어린이집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의 ‘영유아 보육법 개정안’ 너머에는 너무도 힘든 현실이 보인다.

 보육교사의 하루는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대다수의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마음 놓고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갈 시간도 제대로 없이 하루를 보낸다. 이전에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 앞에 늘 놓여있던 글귀가 떠오를 정도다. ‘오늘도 무사히….’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내릴 때는 어느 때보다 신경이 곤두선다. 원에서는 징징거리는 아이들을 벌처럼 날아서 재빠르게 돌봐야 하고 혹여 싸우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낭패다.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학부모가 삿대질하고 원장님은 한숨 쉬고 보육교사는 무조건 머리를 숙인다.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한편으로는 치미는 무엇인가를 꾹꾹 눌러야 한다.

 최근 보육교사들은 답답하다. 자꾸 눌러 앉혀야만 하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상황이 줄을 잇는데도 감정표출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화를 풀지 않고 눌러 놓으니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예민해지거나 아예 감정 따위 읽을 수 없는 냉혈한이 되기도 한다. 일단 이미 난 화를 풀어낼 충분한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치유하고 넘어갈 기회가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올라오는 분노를 참으며 안 그런 척하거나 일을 그만두거나 해야 한다. 참고 버티기만 하면 무감각해지는 순간도 오는데 그것은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름길이다.

 화가 나면 정신이 흐려진다. 최선을 다해 화를 살펴야 한다. 화는 강하기도 하지만 나쁜 에너지이기 때문에 부드럽게 대하지 않으면 폭발한다.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보살펴야 한다.

 화는 크면 클수록 그것을 배려하는 시간도 길어야 한다. 달걀찜 하나를 해도 10분이나 15분은 뜨거운 불에 올려놓아야 한다. 곰곰이 내 속을 바라봐서 왜 화가 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무엇이 소중한 내 가치를 무시했길래 화로 반응하는 것인지 찾아내고 달래줄 기회가 필요하다.

 젊은 날 화를 참기만 한 적이 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부작용이 생겼다. 화가 난 원인은 딴 곳에 있는데 그 일은 꾹 참고 눌러놓으니 다른 일에 불쑥 그 화의 독이 올라왔다. 아이들과 직장동료에게 자꾸 이상한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문득 내 속의 화를 나 스스로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차츰 나아졌던 경험이 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 시ㆍ도 교육청간 갈등도 심상치 않다. 교육부는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총 소요액 2조 1천532억 원 가운데 미편성액 1조 7천36억 원을 기준으로 목적예비비 5천64억 원과 정부보증 지방채 8천억 원만 지원한다고 밝혔고 각 시도 교육청에 누리과정 예산편성 계획안을 요구한 바 있다. 이는 교육부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전체 예산 중 60%만 지원하고 나머지 40%가량은 시ㆍ도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하라는 의미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이 쉽지 않으면 어린이집 운영도 힘들어질 것이고 당연히 보육교사들의 여건이 좋아질 리 만무하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엄마 다음으로 아이들과 눈을 가장 많이 맞추고 놀아주는 사람이다. 일하는 시간이 긴 엄마라면 오히려 엄마보다 더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보육교사의 마음이 힘들면 아이들도 힘들다. 엄마가 힘들면 온 집안이 힘든 것과 같다. 노란 차에 아이들을 태우는 보육교사들의 손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잡아주자. 내 아이를 잘 봐달라는 뜻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힘든 자신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도록 말없이 눈도 맞춰 주자. 따뜻하게 믿어주는 눈길과 손길을 만나면 보육교사들은 반드시 자신의 마음속에 눌러놓기만 한 울화와 정면으로 승부할 힘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더욱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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