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3:33 (금)
클래식 선율 품은 섬을 살갑게 타다
클래식 선율 품은 섬을 살갑게 타다
  • 김봉조
  • 승인 2015.03.31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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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백리길 매물도 ‘해품길’
▲ 바다 백리길 매물도 해품길 중 드라마틱한 매갱이길을 트레커들이 줄지어 내려오고 있다.
당금 출발 3시간 30분 소요
주가 오른 ‘소지도’ 돋보여
예약ㆍ기상정보 꼼꼼히 확인

 햇살 고운 남녘 바다에 채색(彩色)된 고운 빛이 봄소식을 담고,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 같은 트레일을 품은 섬이 있다. 아지랑이 피는 언덕배기와 부서지는 파도 따라, 발아래 닿는 폭신한 땅의 감촉이 고삐 잃은 말발굽처럼 자유로운 땅의 평화가 있는 곳, 굽이치고 오르내리는 길목마다 사시사철 푸른 동백이 선명한 꽃망울을 애잔하게 뿌려놓고, 시선 둘 곳 없이 정신을 빼앗는 풍경은 보는 것, 듣는 것, 맡는 것 모두가 아름다운 이 찰나의 봄을 성큼 내놓는 곳은 아득한 남해의 절해고도(絶海孤島) 매물도(每勿島)다.

 군마(軍馬)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매물도는 개선장군이 말안장을 풀고 쉬는 모습을 닮았다해 말 마(馬)자와 꼬리 미(尾)자를 써서 마미도(馬尾島)라 불렸다. 경상도 발음에서 매미도라 변천되다, 현재의 매물도가 됐다는 정설(定說)과 정착민들이 힘든 시절 메밀 농사를 많이 지어 이름 붙여졌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어린 시절 소풍에서 보물찾기를 기다리는 설레음으로 매물도 당금항에 가까워진다. 중국의 비단처럼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해 당금(唐錦)이라 불리는 마을에서부터 꿈꾸는 감성으로 매물도의 숨은 매력속으로 젖어든다.

 트랙의 시작점 당금항에는 나무판 위에 손으로 그린 매물도 생활거리 안내판이 저절로 미소 지으며 맞는다. 골목길 바닥에 푸른 페인트로 칠한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을 따라 트레일을 시작한다. 민박집들과 매죽 보건 진료소를 지나, 매물도 발전소 정문 좌측에 난 길을 따라 걸으면 해금강 전망대로 향한 야자수 매트길이 푹신하게 이어진다. 전망대에 오르면 쪽빛 바다 풍경과 매물도 주봉(主峰) 장군봉(將軍峰) 방향 전망 데크가 넓은 시야를 열어준다. 당금 마을에서 대항마을로 이어지는 오밀조밀 소박한 오솔길과 빛깔 다른 주황색 지붕들이 첫 그림부터 파동 치는 감흥으로 다가온다.

▲ 해품길 뒤로 해금강 전망대와 어유도가 해안선에 원근법(遠近法)을 주며 층층이 이어진다.
 전망대를 올랐던 매트길을 내려서서 발전소 뒤편 매갱이길을 지나면 드라마틱한 해안길이 곡선을 이룬다. 목너미 몽돌해변을 발아래 두고 데크길을 당기면 옛 한산초등학교 매물도 분교가 42년간 정들었던 주인들을 떠나보내고, 주민들이 민박집으로 개조해 관리하고 있다. 학교를 나와 동백숲길을 따라 걷다보니 몽돌해변에 밀려온 해안 쓰레기가 정갈한 손길을 기다린다. 동백숲길을 내려서면 작은 시냇물이 지나는 좌측 구릉에 당금마을 주민들의 식수원을 모으는 집수장이 자리하고 있다. 우측 산허리에는 오랫동안 경작하지 않은 다랑이 논들이 숲 풀에 묻혀 손길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매물도 아이들의 옛 소풍 터였던 초원에 다다르니, 탁 트인 바다위에 꾸밈없는 섬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시공(時空)을 넘나들며 들리는 듯하다. 풍경의 이면에는 안타깝게도 몇 년 전부터 남부지방에 확산되고 있는 소나무 제선충병 피해가 매물도를 비켜가지는 않은 듯 잘려나간 나무들로 허전하다. 넓은 초원을 뒤로하고 침목(枕木) 계단을 200여m 오르면 파고라 쉼터가 잠시 쉬어가게 한다. 군데군데 동백나무를 지나온 길 뒤로 해금강 전망대와 어유도가 해안선에 원근법(遠近法)을 주며 층층이 이어진다. 고개 들어 한발 한발 옮길 때 마다 가림 없는 조망이 만경창파(萬頃蒼波)를 열어준다.

 해안절벽 전망대 발아래는 등가도 남근바위가 기둥처럼 바다를 가로막고 수심(水深)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빠져있다. 동백꽃이 수줍은 꽃망울을 내미는 능선을 넘어서니 가파른 내리막에 야자수 부직포가 안전한 발걸음을 인도한다. 대항마을과 이어지는 고갯길부터는 제법 넓직한 임도가 장군봉(210m)으로 연결된다. 10분여, 장군봉가는 길 언저리에 위치한 어유대에 올라서면 지붕을 칠한 색들이 세대를 교체하며 대항마을을 변화시키고 있고, 한려수도가 또 다른 비경으로 다가온다. 해양경찰 레이더 기지가 정상을 차지한 장군봉은 매물도 주민들이 ‘할배 당산’이라 부르며 마을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제단이 있고, 매물도의 전설을 조형물로 설치한 군마(軍馬)가 전망대와 함께 포토죤을 내어준다.

▲ 트레커들이 동백과 대숲이 아름다움을 더하는 매물도 ‘해품길’을 걷고 있다.
 장군봉부터 소매물도를 마주보며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는다. 부드럽게 열리는 트랙가에는 황금빛 억새가 물결을 이루고, 간간이 동백나무 군락 사이로 방목되는 염소들이 인기척에 아랑곳없이 자유로운 만행(漫行)을 즐기고 있다. 바다 한 가운데 붉은 등대를 띄운 벤치를 향해 앉으면 음료수 광고의 유명세에 주가(株價)가 오른 ‘소지도’가 미인의 아름다운 가슴처럼 돋보인다. 넓게 펼쳐진 억새밭 중앙에 선 소나무 아래를 걷다보니, 문득 바다에서 삐죽 쏟아 오른 바위를 발견하고 억새밭을 가로질러 내려서니, 흡사, 제주 외돌개 같기도 하고, 동해 추암 촛대바위를 빼어 닮은 바위가 먼 바다를 지키며 숨어 섰다.

 모퉁이를 돌아 황톳길에 발걸음을 멈추니 청옥색 바다를 밀치고 올라온 등대섬 소매물도가 가까이 다가선다. 소매물도 전망대를 뒤로하고 내려서는 트랙에는 후박나무 아래 울릉도와 남부해안에 자생하는 털머위 군락지를 만난다. 소매물도를 등지고 우측으로 감아 내려서니 동백숲과 대숲이 번갈아 이어지고 대항마을 주민들의 식수원을 모으는 집수장을 지난다. 우측 산비탈을 개간한 농토들이 산과 바다에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꼬돌개 오솔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초기 정착민들의 애환과 슬픔이 있는 곳으로 150년 된 소나무가 바닷바람을 이기고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서있다.

 대항마을이 보이는 길목에서 잠시 바다를 감상한다. 부산의 오륙도를 연상시키는 가익도가 친한 친구처럼 손짓한다. 마을 어귀를 대문처럼 에워싸고 있는 대숲과 후박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인적 없이 버려진 집들과 주인 잃은 집기들이 집을 비운 세월이 꽤 흘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항마을에는 대부분 민박을 치고 있다. 특히 매물도 사람처럼 섬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길 권하는 ‘할머니들의 생활민박’ 낡은 간판이 잠시 발길을 붙들고 머무르고 싶은 충동에 빠지게 한다. 편의 시설이 있는 대항마을 휴게소(구판장)에서 마을을 감상하고 출발지였던 당금마을로 향한다.

 대항마을을 가로질러 흙길과 만나는 곳곳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들이 걷는 이들에게 작은 행복을 선물한다. 큰 바위가 있는 언덕배기를 넘으면 바다가 보이는 곳 이정표가 잠시 발길을 멈추고 바다에 시선을 맡긴다. 둘이 걷기 좋은 오솔길은 마지막 고개가 아쉬운지 종착지 당금항을 내려 보며 ‘꼭’ 쉬어가라 자리를 내민다. 어유도를 향해 휘어진 방파제 끝에 선 붉은 등대는 트레커들이 찾아줘 외롭지 않은 모습이다. 잠시, 옛 샘터에 들려 정착민들의 삶을 느끼고, 트랙의 종점 당금마을 구판장에 도착하니 매물도의 특산물 자연산 돌미역을 말리는 손길이 분주하다.

 매물도의 자연 풍경은 다른 ‘바다 백리길’ 섬들과는 사뭇 다른 점들이 많다. 적으나마 우거진 숲을 자랑하는 다른 섬들과 달리 매물도는 드넓은 초원이 있어 하늘과 바다와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지평선 넘어 해가 질 때 펼쳐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매물도의 바다 백리길은 ‘해품길’이라 불린다. 두근대는 심장 박동은 계절마다 다녀가도 이국적인 매물도의 매력에 빠져 뱃고동 소리와 함께 다시 섬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품을 줄 안다면, 또 이전에 소매물도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보셨다면 이제 해를 품어 안아볼 수 있는 (大)매물도로 뱃머리를 돌려 보시죠.

 매물도 섬 트레킹은 사전에 선편 예약과 기상 정보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준비해야 한다. 승선 신고 시 신분증 제시가 필수이며, 기상 변화에 대비한 방풍자켓과 그늘이 적은 트레일에 대비한 차광모자, 식수, 행동식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특히 트레킹 시간과 입출항 시간을 잘 체크하여 여유 있는 시간 조절이 필요하다. 매물도를 잇는 배편은 차량 접근과 입출항 시간을 고려해서 선택 할 수 있다. 통영여객선 터미널에서 운항하는 한솔해운(055-645-3717)을 이용하면 편도 1시간 50분, 거제 저구에서 운항하는 매물도해운(055-633-0051)을 이용하면 편도 35분 소요된다.

 글 : 김봉조 낯선트레킹 대장
 사진 : 최찬락 Mnet트레킹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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