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00:51 (토)
비겁한 지도자들
비겁한 지도자들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5.03.29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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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복지논쟁이 우리 사회의 거대 담론으로 다가왔다. 복지디폴트를 우려, 무상시리즈에 대한 정책논쟁은 시급하고도 절실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미적거린다. 왜냐면 표(票) 떨어질까 봐 겁이 나서다. 무상시리즈의 단초는 2011년 경기도발(發) 무상급식에서 비롯됐다.

 이어 2012년 총선과 대선 때 야권의 3+1 보편복지 프레임(무상의료, 무상급식,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정책)을 쏟아냈고 여당도 경쟁하듯 누리과정, 기초연금, 반값등록금 등 무상공약을 쏟아냈다. 국민도 절실히 원했다지만 정치권이 이를 이용, 국가재정을 감안한 단계적인 정책에 앞서 득표 전략의 차원에서 감성에 불을 지핀 게 사실이다. 그 결과 한국의 복지 시스템은 국회와 정부, 지자체와 교육 등 각급 기관과 단체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또 정부는 물론, 지자체는 무상복지 디폴트(채무불이행)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거센 목소리만 있을 뿐 묵묵부답(默默不答)이다. 따라서 선택적, 또는 보편적 복지의 여부, 적절한 재정조달의 문제까지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할 현안임을 뻔히 알지만 선 듯 나서려 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권은 내년의 총선 때의 표적을 우려, 손을 놓은 가운데 홍준표 경남지사가 고독한 전사로 나서 뭇매를 맞고 있다. 이를 두고 변방에서 대권으로의 이동을 위한 전략이란 논란도 잦다. 하지만 그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주류계층으로의 이동 통로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적폐인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다. 하지만 경남도의 서민자녀 지원 사업이 무상급식을 바라는 계층과 충돌, 등교거부 등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하동군의 한 소규모 학교에서 일어난 사안이지만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복지논쟁의 출발점이 된 무상급식이 선택적 급식으로 재조명되면서 경남발(發) 담론의 장은 열렸다. 하지만 복지 논쟁은 한국사회에 거대 담론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이들 밥그릇 운운하며 얄팍한 감성에 기대는 기대 이하의 논쟁으로 흐르는 조짐이다.

 물론 홍준표란 과녁을 향해서겠지만 이래서는 가치가 없다. 복지는 국가정책의 문제이고 국가재정이 수반돼야 하기에 국회나 정부가 더욱 발 벗고 나서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현재 백가쟁명이다. 한편에서는 복지 수준을 축소해 선별적 복지로 가야 한다는 반면 반대편에서는 한국의 복지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21.7%)의 절반에 못 미치기 때문에 확대해야 한다는 반박이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로 인해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뿐만이 아니라 상층계급과 그 이하 계급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교육 기회, 취업 기회 등의 불평등한 분배를 통해 계급 지위의 ‘세습화’에 문제가 있다. 경제발전에도 악영향을 주는 등 양극화 현상은 미래의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14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계층이동 비중은 22.6%에 불과했다. 최근 8년간 최저치다. 반면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이 된 사람은 0.4%로 역대 가장 낮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부자인 사람은 부자란 얘기다.

 빈곤층에서 부유층까지, 계층 속의 숨겨진 법칙을 파헤친 ‘계층이동의 사다리’의 저자 ‘루비 페인’은 양극화 해결의 해법은 ‘교육’만이 계층의 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물림된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성공의 사다리’가 돼 왔던 교육제도의 고비용 구조가 오히려 계층이동의 장벽이 돼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는 갈수록 힘들어지도록 만들었다. 그 계층 간 간극을 줄이려는 시도가 경남도의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이다.

 도는 옛 시절 쌀집, 연탄가게 집 아들, 국밥집과 콩나물 집의 아들딸들이 명문 중고등학교와 대학에 합격하고 취업하는 등 성공신화가 가능한 사회의 단초가 되겠다는 것이다. 시행을 앞두고 경남은 시끄럽다. 하지만 88만 원 세대와 워킹푸어족이 넘쳐나는 오늘, 우리 사회가 할 일은 계층이동을 위한 사다리를 이어주는 일이다. 개천에서 용이 태어나는 사회, 패자에게도 재도전의 기회가 생기고 승자가 독식하지 않고 힘없는 서민들도 살 만한 사회를 위한 기회제공에 지도자라면 특히 정치권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계층이동이 왕성하게 이뤄지지 않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청년실업이 최악인 가운데 부모 잘 만나는 게 최고의 스펙이라는 젊은이들의 뼈 있는 자조(自嘲)가 공명(共鳴)을 울려서야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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