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09 (토)
장수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
장수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
  • 조성돈
  • 승인 2015.03.24 2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성돈 전 언론인
 우리나라가 세계 최장수국으로 가고 있음이 최근 소개된 적이 있다. OECD 국가 평균 수명이 80.2세인데 우리나라가 81.3세란다. 미국민 78.7세 비해 월등히 높다. 학계의 예상대로 오래지 않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장수국이 될 성 싶다. 자료를 보면 1970년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남자가 58.6세에 불과하던 것이 45년 만에 77.6세로, 19년이나 늘어났다. 한 나라의 평균수명이 이처럼 빠르게 늘어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수명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언제나 의학 얘기가 빠짐없이 나온다. 수명의 연장이 발달된 의학의 덕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27일자 한수진의 sbs 전망대를 보면 이젠 그러한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사회자는 수명에 관한 얘기라면 아무래도 의학전문가와의 대담이 필요한 듯 생각해서였던지 요즘 잘나가는 홍모 박사와 전화대담을 했다.

 방영 의도는 한국갤럽 조사를 근거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등산인데 등산을 장수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홍 박사는 ‘한국 사람들이 담배도 많이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심에도 오래 사는 결정적인 이유가 등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의학박사의 의견인데도 수명연장이 의학의 발달 때문이라는 얘기가 쏙 빠진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홍 박사의 판단은 여러모로 이상하다. 우리나라의 등산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한국갤럽의 등산 인구 추이 조사를 인용하면 월 1회 이상이 1천500만 정도로 나온다. 그러나 월 1회 정도의 등산이 얼마나 건강에 기여할 지 정확하게 알 수 없을뿐더러 어떤 설문조사에서는 가까운 약수터에 가는 것까지 등산으로 포함시켰다 하니 더욱 신뢰하기 힘들다.

 운동 혹은 등산의 건강에 대한 기여도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장수의 비결로 등산을 거론한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의학전문가로서 제시하는 근거로는 이상하다 못해 황당하다. 놀랍게도 홍 박사는 오래 사는 이유로 ‘무엇보다’ 맑은 공기를 마신다는 점을 첫 번째로 꼽는다. 우리가 최장수국으로 들어섰긴 하나 맑은 공기를 마시는 민족의 순서로 따진다면 100위권은커녕 1천위 안에도 들지 못할 것이다. (세계 종족의 수는 대략 7천족 이상이다) 또한 그가 ‘주목’하는 두 번째 이유로 등산이 아주 훌륭한 하체 근육 운동이 된다는 점을 드는데 이 또한 이상하다. 전문가가 의견을 제시할 때에는 단지 ‘주목’만으로는 부족하다. 근거가 중요하다. 하체 근육운동과 수명과의 상관관계는 전혀 밝혀진 게 없다.

 그는 다시 장수의 근거로 등산이 ‘오르막 운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르러서는 말문이 닫힌다. 다리 근육이 건강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을 인정될 수 있지만 현대 의학이론에는 그런 이론이나 자료가 없다. 그리고 ‘인간의 생로병사는 한평생 허리와 다리의 싸움이다’는 격언을 들면서 ‘오르막 운동’과 ‘내리막 운동’을 구분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것은 그의 표현대로 ‘주목’할 만한 요소일 수 있지만 아직 의학적으로는 정립돼 있지 않다. 의학적 근거가 아니라 단지 세인들의 상식 수준에 불과하다.

 그는 허벅지 근육이 인체의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장 역할을 한단다.

 쓰레기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우리 혈관 안에 기름으로 쌓여 중풍이나 심장병ㆍ당뇨를 일으킨단다. 그래서 ‘다리가 굵고 근육이 잘 발달한 사람일수록 혈관이 맑고 깨끗하다’고 기염을 토하는데 그만 말문이 닫힌다. 그의 말대로라면 오래 살려면 무엇보다 다리통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자는 등산 시 주의점을 다시 묻는다. 그러자 홍 박사는 절대로 무리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한꺼번에 갑자기 심하게 하면 안된다고 경고한다. 그 근거로 등산 열풍으로 너무 과도하게 하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왕왕’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필자가 연구한 바로는 그와는 정반대이다. 즉 과도한 운동으로 심장마비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운동부족인 사람의 경우 심장마비의 위험이 더 높다. ‘왕왕’을 걱정하는 경우 정말 ‘왕왕’이 생겨날 수 있다.

 ‘운동중독’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것도 의사들이지만 운동중독이란 건 없다. 필자도 운동에 관한 연구 자료를 오랫동안 찾아오고 있는데 기이하게도 의학에서 운동에 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운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지 몸을 튼튼히 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인체 생리에서 모든 생화학반응을 지배하는 생명 유지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다.

 올라갈 때 좀 가파르게, 내려올 때는 완만한 코스를 고르라, 혹은 등산용 스틱을 구입하라, 발의 앞꿈치부터 먼저 땅에 내딛는 보행법으로 내려오라는 등 조언은 친절하다 못해 측은하다. 바쁘신 것은 이해하나 TV 대담프로라면 최소한의 준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운동이 건강이나 장수에 너무 기여해서는 의사의 입장으로서는 곤란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사들은 어떻게든 운동 얘기에 한몫 끼어 아는 체 하길 원한다. 그러나 운동은 의학의 고유분야가 아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