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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삶의 과제
매력적인 삶의 과제
  • 정창훈
  • 승인 2015.03.15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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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시인/칼럼니스트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고,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라고 한다”는 글이 있다. 좋은 기억과 아름다운 추억만 담아 두라는 뜻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지 순간의 차이일 것이고 우리 스스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경계일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가상의 세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인생의 정거장으로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자기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마음이 기쁘고 보람도 있다. 그 일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논어의 위정편을 보면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뒀고(志學), 서른 살에 인생을 설계했고(而立),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不惑), 쉰 살에 하늘의 뜻을 알았으며(知天命),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耳順),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넘지 않았다(從心)” 이렇게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학문의 심화된 과정을 술회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들과 나 자신을 수십 번 비교해 본 결과 나는 턱도 없이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이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기는커녕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철공소에서 막노동을 했다. 학문에 뜻을 두는 게 어려워 몸으로 기술을 익히면서 하루 세끼를 굶지 않고 먹는 것에 뜻을 뒀다.

 30대에 사람들은 열다섯에 시작한 공부가 15년이 걸려 어느 정도 원숙의 경지에 이르렀고 이제는 주체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결정하는 단계가 됐다. 나는 30대에 불철주야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학문에 뜻을 둬야 하고 인생을 설계하는 일까지 함께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30대는 나에게 가장 열정적이고 치열했던 삶이었고 그때 이룬 삶의 흔적들은 앞으로도 가장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30대에 학교설립이 당장 어렵더라도 학원을 열어 자신의 비전을 공유하는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하고자 했다. 배움에는 빈부의 격차도 신분의 차별도 없다. 학생들에게는 희망을 제시하고, 주부들에게는 삶의 여유와 소통의 즐거움을, 직장인에게는 치열한 경쟁에서 주도적인 협상의 테크닉을,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선진행정과 글로벌 서비스에 대한 마인드를 배우도록 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었다.

 인생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진 40대에는 흔들림 없는 주관으로 세상을 판단해야 한다. 지식의 양보다 명확한 판단력으로 인생에 대한 불안이나 동요가 없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세상이 호기심 천국이었다. 40대에는 수많은 유혹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가오는 유혹에 넘어갈 뿐만 아니라 어떤 유혹이 다가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한 것 같았으니 미혹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지금 50대의 중반을 달리고 있는 내가 하늘의 뜻을 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늘의 뜻은 접어두고 바로 앞에 앉아서 대화하고 있는 사람의 뜻도 잘 모를 때도 부지기수이니 지천명도 나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일본 프로바둑 기사 후지사와는 기성전 타이틀을 차지한 뒤 인터뷰에서 “나는 50이 넘어 더 명민해졌다. 판을 짜는 안목은 바다처럼 넓어졌고, 수를 읽는 능력은 계산기처럼 정교해졌다. 지적 능력은 앞으로도 황야를 달리는 들소처럼 거침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1991년 66세의 나이에 왕좌전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이듬해 2연패를 달성했다.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이순이니 하는 말들은 공자님이 자기 자신의 인격을 기준으로 그 나이에 적합한 최상의 인격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나열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는 말들을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것 같다. 비록 나이가 들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유혹을 받고도 뿌리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불혹의 나이가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진정으로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 지천명의 나이가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물질과 권력만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도 진정 내가 믿는 것이 가치가 있다면 자신에게 끌림이 있고 스스로 즐거워할 수 있는 매력적인 삶의 과제를 부여하고 최선을 다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의 과제를 설계하고 실행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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