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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가 어쨌다고?
헬리코박터가 어쨌다고?
  • 조성돈
  • 승인 2015.03.10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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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 전 언론인
 염산과 각종 소화효소를 품고 있는 위액은 매일 2ℓ 정도가 분비된다. 엄청난 살균력으로 인해 대부분의 세균들은 위액의 산도를 견뎌내지 못하고 녹아버린다. 그런데 그러한 가혹한 환경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세균도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다. (이하 ‘헬리균’으로 부르자)

 kbs에서 이 ‘헬리균’을 치료하면 위암 예방 효과가 크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조기에 위암이 발견돼 내시경으로 절제한 50대 남성이 있다. 흡연력이나 가족력도 없는 그를, 의사는 ‘헬리균’을 원인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실제로 ‘헬리균’을 치료하기로 했는데 그 근거로 미국 국립보건원의 조사를 들었다. 즉 중국인 2천258명을 대상으로 ‘헬리균’을 치료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눠 위암 발생 여부를 15년 동안 관찰한 결과 ‘헬리균’을 ‘완전히’ 치료한 경우 위암 발생률은 3분의 1로 줄었고 위암 사망률도 4분의 1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첫째, 흡연력이나 가족력 없는 50대 남성의 위암의 원인으로 ‘헬리균’을 지목하는 것은 단순 추측에 불과하다. 즉 흡연력이나 가족력은 ‘헬리균’이 원인이라 사실을 담보하지 못한다.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학자들은 ‘헬리균’과 위암과의 연관성은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둘째, 앞서 말한 미국에서의 실험은 신뢰도가 낮다. 우선 조사가 수많은 외재변인을 무시한 채 단순히 ‘헬리균’ 조사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암의 원인으로 ‘헬리균’만을 변인으로 상정한 것은 매우 엉성하다. ‘헬리균’말고도 위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변인들은 대충 수백 가지가 넘는다. 그 변인들의 상호작용까지 고려한다면 ‘헬리균’의 중요성은 크게 의미를 잃고 만다.

 셋째, ‘치료집단’과 ‘비치료집단’을 15년간이나 관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50%를 넘는 세계적인 ‘헬리균’ 감염자 수가 나타내듯 헬리코박터균에 대해 인류는 거의 무방비상태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70% 정도가, 노인의 90% 정도가 보균자다. 물과 야채 등을 통해 전파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지만 ‘헬리균’의 진정한 이동 경로는 지금도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5년간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15년간 계속적으로 항생치료를 할 수는 없다. 즉 ‘완전히 치료한’ 그룹이라지만 그 신뢰도는 낮다. ‘치료집단’과 ‘비치료집단’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는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넷째, 두 집단의 서로 다른 특성은 ‘헬리균’의 치료 여부보다는 오히려 참여자들의 의식구조나 문화수준 등이 더 중요함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치료집단의 위암 발생은 ‘헬리균’치료와는 무관하게 평소 건강관리에 더 적극적이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조건하에서 ‘헬리균’이 위벽을 지속적으로 자극해 염증을 일으킬 수 있고, 그것이 위궤양이나 위암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방영된 내용처럼 ‘헬리균’이 검출됐고 위에 염증이 진행되고 있다면 제균치료를 받는 것이 위암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결론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한 설명과는 달리 지금까지의 연구를 보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헬리균’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일지라도 급성 위염은 자연적으로 호전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저절로 없어지는 경우도 흔히 있다 한다.

 아득한 옛날부터 인류는 헬리코박터균과 함께 살아왔다. ‘헬리균’은 3천년 전 미라에서도 그 존재가 확인된다.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는 ‘헬리균’이 장내 생태계의 정상적인 구성원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대장의 건강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대장균처럼 말이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감염돼 있지만 위궤양으로 이환으로 되는 사람은 2% 정도이며 위암으로 이환하는 사람은 불과 1% 정도이다. 그것도 통계일 뿐 증명된 것이 아니다.

 ‘헬리균’ 감염자들 대부분은 임상적으로 전혀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방송에서 치료에 대해 전문의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지만 의학적으로 정확하게 밝혀진 게 없으니 전문가인들 추측에 의지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아마 의사는 환자를 그냥 돌려보낸 것보다는 치료하고 싶어 할 것이 뻔하다.

 ‘헬리균’을 제거할 경우 위분문부(식도와 위가 연결된 부위)암과 역류성 식도염의 빈도가 오히려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으므로 ‘헬리균’ 감염에 대한 치료는 학계에서도 권장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헬리코박터균을 적극적으로 치료할 필요는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불완전한 주장을 소개하여 혼란을 부추겨서는 책임 있는 언론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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