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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묘는 없는 것일까?
행정의 묘는 없는 것일까?
  • 박태홍
  • 승인 2015.03.09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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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홍 본사 회장
 지금부터 27년 전인 1988년 진주시에는 새로운 명소가 탄생했다. 이름하여 진주 중앙지하 상가. 도심지 중앙간선도로의 교통체증을 없애고 보행인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지하도의 공간을 활용한 대단위 상가와 쉼터였다. 그 당시 진주시의 인구는 진양군과 통합되지 않은 시기였는데도 33만 명을 웃돌고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면서 우리나라의 국위는 선양되고 경제 활성화가 급물살을 타던 시기였다.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각 노동현장에서는 노사분규가 있는 격동의 시기이기도 했다. 일거리가 많은 만큼 노사의 분규도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역동의 시대라고 볼 수 있었다.

 이 같은 국내 정세 탓인지 진주의 1988년도 활기가 있었다. 각종 개발이 이어지면서 보상금으로 인한 현금 동원력이나 활용도도 높아져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돈이 움직이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말해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투기 붐이 일던 그런 시절이었다. 금융실명제, 부동산 실명제가 없었던 시기인 만큼 진주의 지하상가 분양은 투자자들의 구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8.4㎡(2.4평)당 1천980만 원이나 호가하던 211개의 점포분양은 일시에 이뤄졌다.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의해 이를 준공한 S산업과 상가를 구입한 211명의 상가주들은 20년 거치 기부채납형태의 전대차 관계가 맺어진 것이다. 다리목 부근 지하에서 진주중앙시장 입구까지의 지하 점포 수는 평수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211개소.

 공중화장실, 분수대 쉼터 등을 포함, 지하상가로서의 골격을 세대로 갖춘 대단위 상가로 형성된 것이다. 이 중앙지하상가는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큰 보탬이 됐다.

 그 당시 진주에서는 E마트, 홈플러스, 갤러리아 백화점이 들어서기 이전이어서 중앙지하상가는 큰 백화점을 옮겨 놓은 듯한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이들 211개소의 점포주들은 A실업에게 20년간 1천980만 원에 임차했으니 연간 100만 원도 못 되는 세를 주고 권리행사를 할 수 있는 만큼 판매수익에 따른 이윤, 즉 소득도 높았고 프리미엄도 붙었다. 그 당시 진주중앙지하상가에는 약국, 안경점, 의류, 수입품, 화장품, 먹거리, 사진관, 휴대폰 가맹점, 제화점, 귀금속 판매점 등 어느 도시의 큰 백화점 못지않은 상품들을 구비하고 있어 시민들의 발걸음도 잦았다. 한나절을 쉽게 쇼핑하고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기부채납형태의 이 지하상가는 20년이 지난 2008년 5월부터 진주시가 소유권을 갖게 된다. 이때부터 진주시와 상가주들의 마찰은 지금까지 계속돼 한때 잘 나가던 지하상가가 지금은 천덕꾸러기로 변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의 계약대로라면 211개소의 입점 상가주들은 2008년 5월 모두 비워야 한다.

 그러나 행정도 세상사도 만만치만은 않았다.

 경기가 활성화되던 90년대 이후 지하상가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때부터 지하상가점포 권리행사에 따른 전매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프리미엄까지 붙어 크기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보이긴 했지만 주인들이 뒤바뀐다. 뒤늦게 점포를 인수한 사람은 작게는 5천만 원에서부터 크게는 수억 원을 날리게 될 지경까지 왔다.

 입점상인들은 생계문제를 들어 그리고 내재한 개인 사정까지 덧붙여 소송하기에 이르렀고 2008년 5월에서 2013년 3월까지 5년간 두 차례나 임대계약이 연장되는 행정의 묘가 이뤄진다. 시 당국이 입점주들의 편의를 최대한 제공한 셈이다. 그러나 이들 입점상인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3년째 지하상가를 비우지 않고 있다.

 3년간 진주시에서는 입점상인들을 대상으로 설득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마땅히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진주시의 입장은 30여억 원을 들여 진주중앙지하상가를 전면적으로 개ㆍ보수해 새 주인을 찾으려 한다. 이 또한 공유재산관리법에 따른 공개입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갖가지 아픈 사연을 간직한 69개소 중 현재 문을 열고 무단점유 변상금까지 물며 영업을 하고 있는 57개소의 입점주는 묵묵부답이다.

 대안이 없는 셈이다. 이들은 기득권 인정을 요구하며 점포 우선배정 및 수의계약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주시의 입장도 단호하다.

 형평의 원칙을 깨트릴 수 없는 진주시는 5월 말까지 점포를 비우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통해서라도 점포를 비우고 개ㆍ보수 사업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뒤늦게 막차를 타 크게 손해를 볼 이들 69개소의 입점상인들을 다소나마 구제할 수 있는 행정의 묘법은 없는 것일까? 안타깝기만 하다. 2015년 진주의 5월은 잔인하지 않고 행정의 묘가 살아난 푸르른 달이 됐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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