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5:23 (금)
겨울 울릉도, 쪽빛 바다 어우러진 설국 ‘환상 발걸음’
겨울 울릉도, 쪽빛 바다 어우러진 설국 ‘환상 발걸음’
  • 김봉조
  • 승인 2015.02.26 2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눈에 깊게 덮인 나리분지가 설국을 연상시키며 낮게 앉아 있다.
포항~저동 3시간 30분 소요
관음도 걷기 40분 매력 코스
일정 길게 잡아야 후회 없어

 입춘을 지난 이 계절에 환상적인 설국(雪國)을 만날 수 있는 트레킹지는 어딜까? 겨울을 보내는 이 시점에 찾으면 더욱 몽환적(夢幻的) 발걸음에 취하게 하는 곳이 있다. 거친 바다와 통해야 하고, 쪽빛 바다와 파란 하늘도 면(面)해야 하는 곳이기에 선뜻 나서기에 부담이 앞서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끄는 발걸음에 꽂힌 마음을 온몸으로 설레며 새하얀 매력에 흠뻑 빠지는 기다림에 마음은 벌써 설동(雪洞)을 파고 든 훈훈한 꿈을 꾸며 겨울 울릉도로 떠난다.

 오후 2시 30분, 포항여객선터미널을 출항한 우리누리호는 어둠살이 내린 울릉도 저동항에 3시간 30분의 항해시간에 맞춰 트레커들을 쏟아낸다. 저동 고개 넘어 도동 베이스캠프에 여장을 푼 일행은 저녁 식사와 곁들인 반주 한 잔에 울릉도에 대한 기대감을 풀어낸다. 다들 봄, 여름철에는 다녀간 경험이 있지만 겨울 울릉도는 처음이다. 11번째 입도(入島)인 나 자신도 겨울은 2번째다. 와이파이에 연결된 기상예보에는 내일 밤부터 반가운 눈 소식이 있다.

 트레일 첫째 날, 베이스캠프를 제공해준 지인으로부터 4륜 구동 자동차를 지원받은 일행들은 먼저 해안선을 따라 울릉도 구석구석 속살을 드려다 보기로 했다. 사동항에는 독도를 운행하는 돌핀호가 정박 중이고 울릉신항이 제법 큰 규모로 건설 중이다. 통구미 몽돌해변을 지나 거북바위를 감상하고, 아랫통구미 마을로 올라 윗통구미, 남양리 지통골로 이어지는 경사면을 개간해서 조성한 수만 평의 나물 밭에는 벌써 눈 속에서 파릇파릇 나물들이 물오른 봄 내음을 유혹하고 있다.

 일방통행 신호에 따라 통과되는 터널을 수 차례 지나, 학포마을 초입에 내려 만물상을 감상하고 태하터널을 지나니 태하항이다. 태하향목 모노레일을 타고 40도에 가까운 경사를 6분 정도 오른다. 모노레일을 내려 15분 정도 호젓한 옛길을 걸으면 닿는 태하등대 해안에는 ‘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이란 뜻의 대풍감(待風坎)이 한국의 10대 비경으로 푸른 바다와 검은 바위들이 밀고 당기는 해안선을 따라 한 폭의 그림을 연다. 태하등대를 뒤로하고 나오는 걸음 인간극장 ‘낙원의 케이블카’에 나왔던 노부부가 사는 집도 잠시 들러본다.

▲ 제주 우도를 빼닮은 관음도를 걷는 트레커들의 뒷모습에서 삶은 작은 발자국을 남기는 시간여행이라는 지혜를 배운다.
 풍력발전이 있는 현포령을 넘어 방파제가 세련되게 에워싼 현포항 안에는 목교로 이어진 정자가 잠시 다녀가라 손짓한다. 바다 위에는 코끼리바위와 두꺼비바위가 그림자를 어리며 떠 있고, 성인봉에서 바다를 향해 흘러내린 송곳봉이 하늘을 찌르며 북쪽 바다를 지키는 무장(武裝)처럼 서 있다. 나리분지 오르는 지점인 천부항을 지나니 해안선이 낮아지며 파도가 거세진다. 죽암몽돌해변 방파제에는 집채만 한 파도가 삼킬 듯이 포말(泡沫)과 와류(渦流)를 만든다.

 딴바위를 띄운 바다를 감상하며 지나는 석포 해안에는 울릉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삼선암(三仙巖)이 자태를 달리한다. 독립문 바위 속으로 길이 열리고 기다란 연도교(連島橋)로 이어진 관음도(觀音島)가 그 자태를 들어낸다. 2012년 7월 개통된 이 다리는 높이 37m, 길이 140m의 보행자 전용 연도교이다. 입장료 4천원을 지불하고 7층 높이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 걸으면 관음도로 향하는 억새길이 열린다. 다리에 올라서니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에 잠시 몸이 움찔하지만, 이내 에메랄드 빛 짙푸른 바다가 마음을 진정시킨다.

 깎아지른 절벽을 이은 계단의 경사는 아찔하게 급하다. 발 아래 방사성 주상절리와 행남등대, 내수전전망대가 시야를 당긴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하늘을 가린 오르막을 올라 안부에 닿으니 트레일이 나눠지는 지점이다. 우측으로 빨려들 듯 이어지는 길은 창문 없는 바다로 열리는 길목 같은 기다란 환상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기에 놀라 다시 눈을 뜬다. 제주 우도를 닮은 죽도(竹島)다. 죽도에는 얼마 전 경사가 났다. 죽도 지킴이 노총각 김유곤(47) 씨가 혼인을 했으니, 죽도 거주민은 곧 두 사람이 되는 것이다.

 돌아 나오는 길은 검은 화산토에 습한 기운이 가득하고, 갈대밭이 넓게 펼쳐진다. 작은 능선을 잇는 트랙은 문득, 우도 후해석벽(後海石壁) 위를 걷는 착각에 들쯤 삼선암을 필두로 열려있는 S라인 해안선이 인상적인 탄성을 자아낸다. 관음도를 한 바퀴 걷는 시간은 넉넉하게 40여 분이면 된다. 관음도를 나와 섬목으로 연결되는 관선터널을 통해 섬목 선착장까지 들어가 본다. 저동으로 이어지는 해안일주도로 마지막 구간 터널공사가 한창이다. 갈 수 없는 길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천부로 나와 나리분지로 향한다.

 해안 길과는 다르게 평균해발 500m인 나리분지는 보탬 없는 설국(雪國)이다. 성인봉을 남쪽으로 중앙에 알봉을 위치한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혹시나 다시 올 기대감에 등산로 입구를 확인하고 나오는 길에 인적 없는 너와집을 이곳저곳 들여다보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 위를 뒹굴며 트레커들은 한바탕 동심에 빠진다. 난리법석을 피며 원 없는 눈싸움에 지칠 즈음 태양은 한반도를 향해 멀어지고, 트레커들은 바다로 내려앉는 석양을 잡으려 짧은 하루를 쫓아 달린다.

 날이 저문 베이스캠프에 들려오는 기상예보는 밤부터 눈 소식이다. 새벽녘 눈발이 거칠어지는 창문 넘어 단언할 수 없는 새하얀 눈이 쌓여가고 있다. 아침 일찍, 현지민이 전해주는 소식은 울릉도 전 등산로와 해안 산책로에 출입 통제가 내려졌다 한다. 이제 철없이 낭만을 기대하던 설국이 아니라 옅은 불안과 심산한 마음이 뒤섞여 내리누른다. 그래도 어렵사리 들어온 울릉도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것 보다 밖으로 나서자는 의견을 모아 이웃한 저동을 향해 나서기로 했다.

 트레일 둘째 날, 눈에 맞설 것이라며 방한모에 스펫츠, 판초우의까지 착용하고 도동을 출발한 트레커들은 저동 고개를 넘는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시간에 거칠어지는 눈보라는 황소라도 날려버릴 듯한 기세로 앞을 가로막는다. 시야를 확보해줄 고걸 위를 때리는 굵은 눈은 한걸음 앞선 일행의 위치도 가늠하기 힘들다. 도동에서 저동까지는 약 3㎞, 평소 40분이면 넘는 시간을 2시간 가까이 걸려 저동 어판장에 겨우 도착했다. 한마디로 사투를 체험한 트레커들이지만 여지껏 느끼지 못한 짜릿한 즐거움에 저동의 따뜻한 식당에서 몸을 녹인다.

 울릉도를 흔히들 ‘자물도’라고도 한다. 이는 ‘한번 들어가면 마음대로 나올 수 없는 섬’이라는 뜻이다. 이번 울릉도 겨울 눈(雪) 트레킹은 포항~저동간을 운행하는 (주)태성해운(1688-9565) ‘우리누리호’에서 협찬한 팸투어로 진행됐다. 2박 3일 일정으로 시작한 트레일이 기상악화로 결코 의도하지 않은 6박 7일로 연장됐다. 덕분에 들어가고, 나오는 일정을 제외한 5일 동안 울릉도의 옛길을 속속들이 걸어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이번 주 기사와 함께 다음 회까지 알려지지 않은 설국(雪國) 울릉도의 숨은 매력을 함께 걸어 보고자 한다.

 글 : 김봉조 낯선트레킹 대장
 사진 : 최찬락 Mnet트레킹 단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