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천태만상
갑질 천태만상
  • 정창훈
  • 승인 2015.02.2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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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김해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의 어떤 행동을 뜻하는 ‘갑’과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갑질’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SNS에서는 갑의 무한 권력과 횡포를 꼬집는 슈퍼 갑, 울트라 갑, 슈퍼 울트라 갑까지 등장하는 현실이다.

 갑과 을은 십간에 속한다. 천간(天干) 또는 십간(十干)은 지지와 함께 간지를 이루며,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를 말한다. 십간의 본의는 고대 연구에 편리한 한의 석명이나, 사기의 역서에 의해서, 실은 생명 소장의 순환과정을 나누어 설명한 것으로 이는 상하 서열이 아니다. 인간에게 몸과 정신이 있듯이 천지에도 열 가지 기운이 있음을 의미하는 동등한 개념이다.

 그런데 그 심오한 두 글자 ‘갑, 을’이 우리 사회에서는 계층의 관계로 변질돼 버렸다. 다양한 형태의 계약서를 작성할 때 이해당사자를 단순히 갑과 을로 지칭한 관습에서 시작된 것이 인간관계에서의 서열이 돼 좋지 못한 갑질, 을질, 병질, 등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을(乙)은 십간(十干)의 둘째를 이르는 말이다. 을은 둘째라는 태생적 연유로 갑(甲)의 아래에 항상 자리매김하게 돼 있다. 을이 갑을 떠받치는 아랫돌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랫돌을 발로 차고 폭행해서야 갑에게 좋은 천간의 기운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성장이 멈춰지고 성장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갑질이라고 하는 만행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저버리는 비도덕적인 행위로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백주 대낮에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자신의 일을 성심성의껏 도와주고 대신해주는 사람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을 갑을관계로 보고 있고 자신도 모르게 갑질을 하면서도 그것이 정당한 사회적 행위라고 착각하고 있다. 사회적인 기준과 정의로 갑질을 하지 않고 나의 욕심과 감정으로 갑질을 하는 것이다. 계약관계가 있는 하도급 업체, 거래처 임직원, 하급기관 종사자가 갑질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족과 같은 회사 직원에게도 서슴치 않고 갑질을 하고 있다.

 비행기도 내 것, 직원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재벌가 오너 딸의 땅콩 회항, 백화점 주차장의 주차원 폭행모녀, 수습사원 전원 불합격 사태를 일으킨 위메프의 황당 해고는 전형적인 갑질의 행패다.

 우리 사회가 존중하는 것은 합리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선순환시키는 자본의 자기증식과 기업가 정신이다. 단지 자본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존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돈이 사람보다 위에 있다는 착각으로 돈이면 충분히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사고로 우리사회에 고질적인 병폐인 갑을관계를 부각시킨 사례들이다. 이러한 갑질의 구조가 사회에 만연되고 조직의 시스템에 반영된다면 우리 모두는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돈을 가진 사람이 갑인 세상, 돈의 권력과 돈에 대한 우월의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고착화된 위험한 사고가 타인에게도 강요하는 모순을 낳고 있다. 이러한 사고와 행동이 갑질하는 무질서와 인간비하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태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잘 조직된 집단분노의 표출은 우리 사회에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숱한 전관예우, 온정에 기댄 판결, 공직비리 등 묻힐 뻔했던 많은 부조리가 국민들이 토해내는 분노의 힘에 의해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집단분노는 분명히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 또 이때까지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조리들이 집단분노 덕에 민낯을 드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집단분노는 맹목적인 비난이 아니라 건강한 방향의 토론, 사회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 갑질의 논리를 깨트리는 것은 사람이다. 저항하기 어려운 약자를 향한 무자비한 폭력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인간은 결국 영혼의 존재다. 사람에 대한 존중,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풍족한 삶이 아니더라도 권력이나 명예, 학벌이 없어서 성공하지 못한 인생이라도 불공정한 대우받지 않고 억울해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가 무상보육, 무상의료,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보다 더 행복한 나라다. 억울하고 분해서 잠을 못 자고 가슴에 한을 품고 이승을 떠나는 사람이 많으면 분명 올바른 나라가 아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갑질을 제도적, 문화적으로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제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은 질이 아닌 관계를 위해 신성한 노동의 포용과 사회적 신뢰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갑, 을 병, 정… 천간의 기운이 담긴 한자가 긍정적 의미로 밝게 쓰여지는 세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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