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9:32 (금)
청문회가 아니었다면…
청문회가 아니었다면…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5.02.15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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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군주라고 다 군주였든가. 성군과 폭군, 현군과 혼군(昏君)이 들쭉날쭉 한 사실은 지난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재상은 천하 선비들 가운데서 선택된 ‘인재 중의 인재’였다.

 그렇게 ‘선택된’ 재상이 ‘관료집단’의 수장으로 국사를 처리해야 천하민심이 안정된다는 것도 지난 역사가 일깨워 주고 있다. 삼봉 정도전(1342~1398), 그가 ‘꿈꿨던’ 재상 정치는 너무도 혁명적인 주장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곱씹어 봐도 현답(愚答)이었다.

 왕조시대였기에 받아들일 수 없었고 ‘왕권’을 외쳤던 이방원(태종)의 칼에 정도전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지만 ‘군주의 권한은 단 두 가지, 하나는 재상(宰相)을 선택ㆍ임명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 한 사람의 재상과 정사를 논하는 것이다’란 재상론이 새삼스럽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총리 지명 직후 “대통령께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했다. 군주가 천하를 도모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게 ‘불소지신’(不召之臣)이다. 임금도 함부로 오라 가라 부를 수 없는 신하, 왕에게 과감하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신하를 말한다.

 그런데 헛웃음이 나온다. 600년 전 정도전의 ‘재상론’에 비춰봐도 그렇고 50여 년 전부터 (청문회) 준비했다고 나도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총리 후보자에겐 미안하지만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50년 준비도 헛것임이 드러났다. 그는 사죄, 대오각성을 말하며 굴신(屈身)했지만 또 탈이 난 꼴이다. DJ 4명→ 盧 2명→MB 6명→ 朴 정부 7명. 청문회제도 도입 후 역대 정부에서 청문회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 총리ㆍ장관에서 낙마한 숫자다.

 낙마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16일 현재 2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벌써 7명으로 기록을 경신했다. 국무총리는 DJ 2명, MB부 1명, 박 정부 3명이다. 장상(2002년 7월)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로 장대환(2002년 8월)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의혹으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김태호(2010년 8월) 박연차케이트 연루 의혹, 세금탈루 의혹, 김용준(2013년 1월) 아들 병역문제, 부동산 투기 의혹, 안대희(2014년 5월) 전관예우 의혹, 문창극(2014년 6월) 식민사관 의혹 등으로 내정자 신분 때 자진사퇴 했었다.

 그런데 이 후보는 어떤가. 제기된 의혹과 논란거리는 종합선물세트 수준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병역 의혹, 부동산 투기 의혹, 교수 특혜채용 의혹, 논문 표절 의혹, 건강보험료 탈루 의혹, 재산 축소신고 의혹, 삼청교육대 관련 의혹 등 의혹이 사회 곳곳, 전 분야에 걸쳐 넘쳐나 ‘준비된 총리 후보자’란 게 빈말임이 드러났다.

 여기에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보도를 통제하려는 언론외압, 그리고 김영란법까지 동원, 언론을 겁박하려는 언행은 일국의 총리 후보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을 안겼다.

 청문회에 앞서 제기된 의혹도 해명 절차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수그러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오히려 거짓말도 드러나 정직성과 신뢰성 문제로 이어지는 등 만신창이가 됐다.

 때문에 홍준표 경남지사는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청문회를 통해 후보가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물론, 깨끗한 삶의 발로(發露)겠지만 호응도가 높은 것은 청문회를 통해 구린내 풀풀 풍기며 드러나는 온갖 의혹을 국민들이 직접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정부는 앞서 두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했다. 청문회를 통해 분칠했던 그의 민낯이 드러난 것에도 충청홀대론 등 곁가지 물타기로 얼버무리려는 것은 국민을 핫바지로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망가진 얼굴로는 총리란 얼굴마담에 제격이 아닌 것 같다. 갤럽 여론조사 결과, 총리 지명 직후의 적합(39%), 부적합(20%)이 청문 기간 후 적합(29%), 부적합(41%)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세 번 낙마가 아니라 열 번이래도 아닌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청문회를 통해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부풀려졌고 낙마한 전 후보들보다 훨씬 심각한데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옳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 국정운영을 바란다면 이 후보자 스스로 결단하길 바란다. 원내대표 시절, 대통령 각하, 각하, 각하를 외친 그가 백성의 올곧은 소리를 제대로 전할 수나 있을까 해서다. 재상은 군주의 좋은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정도전의 재상정치가 새삼 귓전에 윙윙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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