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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화 될수록 비전문화된다
전문화 될수록 비전문화된다
  • 조성돈
  • 승인 2015.02.11 2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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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 전 언론인
의료 세분화 상업주의 소신
분석보다 통합의학이 필요
의사들 새 기술 못 따라가

의학 분야가 전문화될수록 치료도 전문화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예를 들면 간과 소장을 분리할 경우, 인체를 정확히 볼 수가 없다. 전문화될수록 환자는 사라지고 병든 장기만 남는다. 장기는 고쳤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환자는 이미 죽어있다. 물론 이때 의사는 자신의 전문분야에서는 할 일 다한 것이 된다.

 현재의 의학이라는 학문은 동굴 깊숙이 나아간 탐험 대원들에 비유될 수 있다. 점점 미로처럼 갈라진 길들로 분산돼 흩어진 대원들은 동료들이 현재 어디쯤 서 있고, 또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동굴의 전체적인 모습은 알 길이 없고, 모두가 흩어진 채 고립돼 간다. 즉 전문가 양성에만 치중하는 현재의 의학교육은 총체적 유기체로서 생명체를 바라보는 자연관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외과 전공이라서 다른 과목은 잘 모른다는 식으로 자신의 無知(무지)를 감춘다. 의사들은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반대로 자랑스러워한다. 무지를 자신의 전문성을 보증 받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의료가 전문화로 치닫고 있는 이유는 별거 아니다. 환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전문성을 내세워 환자를 확보해 보려는 상업주의적 소산에 불과하다. 규모의 경제가 병원의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소형병원을 깔아뭉개려는 주먹 패권주의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때 피해는 환자의 몫이다.

 특정 질병이나 특정 장기 치료에만 집중하는 전문가들은 ‘전체론적 자연관’ 개념에 서투를 수밖에 없다. 외과에서 수술을 했지만 합병증이 나타날 경우, 의사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과 등 다른 과로 넘기면 그뿐이다. 환자를 넘겨받은 내과 전문의는 합병증의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다시 외과전문의의 의견을 들어야할지 어떨지 우물거리기도 한다. 이래서는 올바른 치료가 될 턱이 없다.

 철저하게 전문화된 대형병원에서는 수술환자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간단한 염증이나 발열 또는 입원 중에 나타나는 사소한 감기, 혹은 매우 간단한 증상조차도 굳이 다른 과 전문의의 의견을 묻는다. 내과가 여러 분야로 다시 전문화돼 있는 병원이라면 더욱 혼란은 가중된다. 내과는 맞는데 어느 내과에서 진료해야 할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치료율 개선과는 상관없이 나날이 개발되고 있는 수많은 첨단 진단기술과 치료기술 기법들은 물론이고 빠르게 바뀌고 있는 새로운 의학지식을, 환자보기에 바쁜 의사들이 쫓아갈 도리가 없다. 그래서 의사들이 환자의 해박한 지식에 주눅이 드는 경우가 자주 나오게 되는데, 그때 의사는 환자의 질문에 되레 화를 낸다.

 그리고 전문화된 종합병원에 가면 진찰하는 의사, 검사하는 의사, 주사 놓는 간호사, 약을 주는 약사가 분업화돼 있어 누가 자기를 책임지고 치료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환자들은 늘 불안하다.

 ‘놀라운 발전’의 결과 생겨난 지식의 양적팽창은 의료의 전문화를 불러오고 그로 인해 질병치료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지식의 덤불은 산만하게 뻗어 있을 뿐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무조건 파헤쳐 놓고 보는, 미시적 분석법으로 일관하는 과학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통합되지 않은 지식은 ‘서 말의 구슬’과 유사하다. 의학은 다른 학문과는 달리 내부의 지식들을 통합시킬 법칙이나 원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빠른 전문화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나친 전문화로 인해 상반되는 이론이나 치료가 예사로 행해지며 치료법이 유행처럼 바뀐다.

 속도와 전문성은 현대과학의 새로운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에게 과연 유익한 것인지 타 분야의 과학에서도 논란이 많다. 분석에서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특히 의학에서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전문화가 진행될수록 의학은 점차 본질과 멀어지게 된다. 의료관계인들은 고래의 자연철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즉 의학은 의학을 보완하고 초월하는 어떤 새로운 철학체계를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들이 동양의 신비주의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뉴턴역학을 능가하는, 인류 마지막 과학이론 양자역학은 동양철학과 매우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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