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정치에 대한 소고
현실정치에 대한 소고
  • 박태홍
  • 승인 2015.02.0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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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홍 본사 회장
 오래전부터 도하신문을 보면 비박, 친박, 비노, 친노, 친이 등 한글 사전에도 없는 단어들이 지면을 메우고 있다. 이는 각종 방송매체에서도 그렇고 특히 종편에서는 더욱 심하다. 독자들과 시청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특정 정치인을 두고 친박 또는 친노로 분류해 정치적 현실을 꼬집어 풀어나가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지난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3선의 유승민 의원이 4선의 이주영 의원을 물리치고 당선됐다. 이 기사를 내보내는 도하신문과 각종 방송매체에서는 모두 유 당선자를 비박으로 이 탈락자를 친박으로 분류, 기정사실화 했다. 게다가 어떤 신문은 ‘비박 투톱 당청쇄신 증세 기 싸움’이라는 제목까지 달았다. 비박 투톱은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의원과 원내대표로 당선된 유승민 의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새누리당의 최고 지도부다.

 이 같은 사례는 야당의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대표 경선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의원을 친노로 박지원 의원을 비노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문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기 때문에 친할 친(親)을 사용, 친노로 분류했고 박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기에 아닐 비(非)를 사용, 비노로 분류한 것은 타당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김무성 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비박 분류는 국민들이 크게 의아해 한다. 비박이라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는 ‘아니다’는 것을 시사한 것 아닌가. 그러나 김 당 대표와 유 원내대표의 정치적 궤적을 살펴보면 새누리당의 어느 의원보다도 박 대통령과 함께한 시간들이 많은 것이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김무성 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대통령 선거를 총괄 지휘했던 총괄선대본부장을 역임,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이다. 또 거슬러 올라가 이명박 의원과 박근혜 의원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경선시도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의원의 좌장 역할을 맡아 대의원 투표에서 이명박 의원을 이기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박근혜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뒤져 이명박 후보에게 대통령 후보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그 당시 김무성 의원의 탁월한 당원 결집능력은 지금도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숨은 얘기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지금 김무성 당 대표는 당, 정, 청의 한 목소리를 고대하고 있다. 꼭 정치인들을 두고 계파별로 분류한다면 김무성 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친박으로 분류돼야 하는 것 아닌가?

 오늘날과 같은 계파별 붕당정치는 조선 시대에서도 있었다. 조선의 사색당파로 알려진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의 뿌리는 사림이었다. 사림이란 조선 건국에 가담하지 않고 향촌으로 내려갔던 고려의 사대부 세력의 후예들을 말한다. 이들은 성종 때부터 현실정치에 참여하면서 4대 사회가 일어난다. 한마디로 말하면 당파싸움으로 인한 조선국의 폐해였다. 연산군 재위 4년인 1498년 무오사화를 비롯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면서 사림은 발붙일 곳이 없었다. 그 후에도 사림은 훈구세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아오다 중종 14년인 1519년 기묘사화 명종 1년인 1545년 을사사화까지 겪는다. 그 후 선조(1567~1608)가 즉위하면서 사림이 정계에 또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혁신정치의 잔재를 둘러싸고 서로 간 갈등을 빚으면서 동인과 서인으로 나눠 붕당을 이룬다.

 김효원을 중심으로 한 신진 사림의 동인과 심의겸을 수장으로 한 기성 사림이 서인으로 쪼개지면서 각각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게 된다. 동인은 적극적 수기강조와 원칙을 철저히 하며 지배자의 도덕적 자기절제를 강조하는 반면 서인을 제도개혁을 통한 안민에 정치적 바탕을 둔다. 그러나 정여립모반사건 등을 계기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리고 서인을 노론과 소론으로 계파를 이루게 된다.

 후세의 사가들은 동인에서 떨어져 나온 남인을 온건파로 북인을 급진파로 분류한다. 그리고 서인에서 분류된 노론은 명분을 존중하고 민생안정을 꾀하는 반면 소론은 실리를 중시하며 적극적 북방정책을 주장한다. 이를 볼 때 시대별로 본 그들의 주장은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 할지라도 국익을 위한 하나가 된 통합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지금 현실의 계파정치에 국민들은 불신하고 있다.

 이럴 때 여ㆍ야는 지난날 선조들의 붕당정치의 폐해를 거울삼아 해묵은 이념이나 갈등, 편 가르기식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일치된 해법을 여야가 함께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집권여당만이라고 親이 여야 하지 계파를 따로한 非가 돼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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