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納骨堂)은 ‘들일-납(納), 뼈-골(骨), 집-당(堂)’으로 ‘고인의 뼈를 거둬들이는 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한자어는 일본식 표현방법이다. ‘납골당’이란 천박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신님의 유해를 화장해 그 유골을 그릇에 담아 안치해 두는 장소를 웃어른을 받들어 편안히 모신다는 뜻으로 ‘봉안당(奉安堂)’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조선 시대의 많은 사대부들이 화장풍습은 ‘애비 없는 오랑캐의 가르침’이라고 하며, 강력하게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리고 이러한 상소를 받아들인 왕은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하며 삼년상을 기본으로 하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로써 불교문화의 화장(火葬)은 부정되고, 유교문화인 매장(埋葬)이 발전했다. 더구나 명나라의 법에 따라 화장을 치르는 사람들에게는 엄벌을 내린 적도 있었다. 그로 인해 조선 시대에는 화장과 납골당은 거의 없었다.
조상에 대한 화장풍습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왔고, 그로 인해 납골당 역시 많이 등장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납골당이라고 하는 용어 자체가 일제강점기 시대에 유입됐던 표현이다. 이러한 일본식 발음 역시 일제강점 시기에 들어와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표현이므로 지난 2002년부터 산업자원부가 ‘봉안당’으로 부르기를 권장했다. 이 같이 사업자와 이용자 간의 의사전달을 명확하게 잘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언어상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역사의 잔재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납골당’이라는 용어를 ‘봉안당’이라는 용어보다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납골당을 설치하면 주위의 주민들이 매우 혐오하며, 재수 없는 시설물로 여겨 설치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다. 최근에는 인식이 바뀌어 ‘봉안당’ 뿐만 아니라 ‘수목장’이나 ‘해수장’에도 주민들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아직까지 봉안당보다는 납골당 용어를 더 많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나, 앞으로 꾸준한 노력으로 ‘납골당’이 아닌 ‘봉안당’ 또는 ‘추모공원’으로 그 명칭을 개칭해 부르는 것이 가신님의 영혼을 기리는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