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3:52 (토)
趙錦順(조금순)
趙錦順(조금순)
  • 송종복
  • 승인 2015.01.14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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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趙:조 - 성 錦:금 - 비단 順:순 - 순하다

 6ㆍ25전쟁 중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방이 점령당하자 흥남부두에서 철수하던 중 조금순을 놓쳤다. 따라서 애절하게 찾는 주인공의 대명사로 금순이를 칭한다.

 흥남부두의 ‘굳세어라 금순아’의 주인공은 ‘조금순(趙錦順)’이다. 요즘 세간에 ‘노래하면 금순아, 얘기하면 국제시장’이다. 이는 영도다리 옆 항구다방에서 파이프를 물고 있다가, 배에 씌어진 ‘금순’이라는 낙서를 보고 부른 것이다. 현인(본명 : 玄東柱 1919~2002)은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일제의 징용을 피해 중국 상해ㆍ천진으로 건너가 ‘신태양’이란 악단을 조직했다. 그는 1953년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중략)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든가’를 흥남부두에서 잃어버린 애인 금순이를 찾아 헤매는 사내의 처절한 감정으로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렀다.

 엊그제 뉴스 ‘국제시장 시네마(cinema)’에 천만 명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대에 같이 가는 분들의 삶을 그려보는 ‘파노라마’인가 보다. 지난 박정희 정권 때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8도 강산’이란 영화의 향수가 되뇐다. 이 국제시장은 50년대 흥남부두의 피난민, 6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 70년대 파월 장사꾼 등으로 엮은 것을 ‘국제시장’으로 재현했다. 더구나 한 많은 피난살이는 국제시장과 영도다리에 애환이 많다. 당시 국제시장이란 사람 빼고 모두 외제다. 영도다리는 고기 빼고 모두 피난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50년 6ㆍ25전쟁 중 10월에 압록강까지 진격하자 마침 중공군의 개입으로 남쪽 후방을 차단하자 철수명령을 내렸다. 마침 미군 ‘메레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가 기름을 보급하기 위해 흥남항에 도착하자 귀환명령을 받았다. 이때 피란민들이 이 유조선을 향해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고, 울부짖었다. 그 배는 사람을 태우면 위법인 것을 알면서도 ‘사람보다 귀한 무기가 어디 있겠는가’ 하며 모든 총기류와 군수물자를 폐기하고 피란민을 실었다. 이 배의 최대 탑승정원 2천명인데 무릇 1만 4천명을 콩나물시루같이 싣고 영하 30도인 혹한에 3일 동안 먹을 것도, 화장실도, 움직일 공간도 없이, 한 명의 희생자 없이 25일 낮 12시 42분에 거제도 장승포항에 정박했다.

 이렇듯 정원을 초과해 많이 태운바 없는 빅토리호를 ‘단일 선박으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기적의 배’로 2004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이 기적의 배는 얼마간 쉬었다가 또다시 월남전에 동원돼 임무를 다한 후 고철로 팔려 중국의 항구에서 1996년 해체됐다는 아쉬움이 역사가 뒤안길에 사라졌다. 그동안 전쟁이, 가난이, 이산가족 슬픔이 얼마나 무서운가. 이 과정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역사적 산 교훈을 이번 ‘국제시장 시네마’의 흥남부두, 깡통시장, 영도다리, 금순이 행적, 파독광부, 월남전 등을 통해 자라는 젊은이에게 애국심을 심어준데 의미가 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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