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7:34 (화)
국어에 대한 애정은…
국어에 대한 애정은…
  • 권우상
  • 승인 2015.01.13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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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
  중국은 다민족 국가다. 넓은 대륙에는 민족 간의 분쟁이 그치지 않아 수많은 전쟁의 상처가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漢 民族)이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일찍부터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민족 고유의 문자인 한문이 여러 민족을 하나로 묶어내는 끈이 됐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중국문화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우리민족은 한글 덕분에 우리말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남북이 분단된 우리나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단일민족이기에 필연적으로 통일의 합일점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은 우리가 식민통치에 들어가면서 우리 말 우리 글을 쓰지 못하게 탄압했다. 우리의 민족 정신, 우리 민족이 느낄 수 있는 문화적 일체감을 파괴하려는 의도였다. 일본의 한국어 말살 정책에 따른 언어문화의 이식(移植)은 한국과 일본 두 민족의 동화(同化)를 꾀하는 지름길이다. 이는 어떤 정책이나 공세보다도 식민통치의 효율적인 방법이다.

 모국어를 지키는 일은 민족 또는 국가 존립의 핵심이다. 일본과 미국에는 우리 동포가 많이 살고 있지만 생활상은 일본과 미국이 현저하게 다르다.

 일본에 사는 동포 숫자는 미국의 교포보다도 훨씬 많지만 한국어 신문이나 한국어책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재일교포 2~3세들은 간단한 한국말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재미교포는 재일교포와는 다르다. 뉴욕의 번화가인 맨해튼에는 한국어책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대형서점이 있고 한국어 일간지도 발행되고 있다. LA에는 한국어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 적지 않다. 미주판 한국일보ㆍ동아일보ㆍ복음신문 등이 오래전부터 발간돼 읽히고 있다.

 재미교포들은 타국에서의 정서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불안과 불편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모국어로 된 신문과 책들을 읽으며 살고 있다. 우리 말 우리 글에 대한 사랑이 돋보인다. 이것이 곧 민족혼이며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지켜가는 일이다. 그렇다면 일본과 미국 동포 간에 왜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재일교포는 모두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억지로 끌려간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찾기가 힘들다. 어느 국가보다 민족 차별이 심한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핍박과 수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재미교포는 모두 자의적으로 미국 이민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한국을 모국으로 하는 미국 시민들로서 정서적으로 한국이라는 뿌리를 굳게 움켜쥐고 있다.

 그들은 떳떳한 자부심으로 우리 말을 쓰고 우리 신문을 읽는다. 그들은 영어로 교육을 받고 영어로 세계 명작을 읽고 있다.

 한국의 고전이나 역사소설 현대문학을 읽지 못한다면 그들은 미국식 사고방식을 지닌 미국인으로 굳어지게 될 것이다.

 배달민족의 얼굴과 피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배달민족이 아닌 쪽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세계 속의 한국’이 되려면 민족이 있는 곳마다 우리 문화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동포사회가 합심해 국어교육 대책을 세워야 한다.

 명작 중에 ‘등대지기’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조국을 떠나 평생을 타국만리에서 방랑하다가 노년에 귀국한 노인이 주인공이다. 노인은 만년에야 조국에 와서 안식을 느끼게 된 것은 모국어와의 뜨거운 만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노인이 어느 섬의 등대지기가 돼 정착한다. 식량과 식수가 없어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보급선을 기다린다. 노인은 기력이 쇠진해 있다. 외로운 섬에서 파도소리만 그의 주름살을 더욱 깊게 해줄 뿐이다. 어느 날 보급선이 나타나 식량과 식수를 건네주고는 뜻밖에 소포 하나를 준다. 노인에게는 처음 받는 선물이다.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소포를 풀자 거기엔 폴란드어로 쓰인 몇 권의 책이 있다. 노인은 책장을 넘기며 심장이 멎는 듯한 감동을 하며 오열을 터뜨린다. 어린 시절에 듣던 어머니의 나직한 말소리가 책갈피에서 들려온다. 노인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노인은 책갈피에 얼굴을 파묻고 황홀한 꿈속에 잠겨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난다. ‘등대지기’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의 통곡이라고 할 수 있다. 국어에 대한 애정, 그것은 조국에 대한 애정이다. 모국어로 된 책을 읽는 동안 노인의 가슴 속에서 강렬하게 샘솟았던 것도 조국에 대한 애정이다. 막연하기만 했던 조국에 대한 애정이 모국어 속에서 다시 살아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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