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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와 잠복기
에볼라와 잠복기
  • 조성돈
  • 승인 2015.01.07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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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 전 언론인
 얼마 전 필자가 우려했던 정부의 위험한 에볼라 정책이 현실로 나타나려 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을 위해 시에라리온에서 최근 의료대원 1명이 환자의 주삿바늘에 스쳐 독일로 후송된 데 이어 미국 의료진 1명도 감염 가능성이 밝혀져 본국으로 후송됐다. 그뿐이 아니다. 국제 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5일 시에라리온에서 돌아온 영국인 간호사 폴린 캐퍼키의 에볼라 감염에 따라 근무지였던 케리타운 치료센터에서 의료진 안전실태를 정밀 조사할 계획이란다. 보도에 의하면 간호사 캐퍼키는 병세가 악화 중인 모양이다. 조사에서 의료진의 보호장구 사용 과정상의 문제점 등을 점검할 것이라지만 간호사가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고, 우리 대원 사고의 경우처럼 주삿바늘이 스치는 등 사소해 보이는 우발적인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가 있다.

 거기에다 5일, 에볼라 출혈열이 확산하는 서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하고 귀국한 한국인 남성 A씨가 에볼라 의심 증상을 보여 격리 관찰 중이라 한다. 다행히 음성반응이라지만 그렇다고 안전하다고 보기 힘들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인 10명 중 8명은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환자를 돌보고 나서 미국으로 돌아온 의료진에 대한 의무격리 조치를 찬성했다. 의심증세가 있든 없든 간에, 에볼라 창궐지역에서 활동한 의료진에 대해 의무적으로 격리조치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판정한 음성반응조차 미심쩍어하는 탓이다. 실제 작년 10월, 미국 뉴욕과 뉴저지주가 중앙정부 지침에서 강화된 에볼라 예방 조치에 따라, 에볼라 감염ㆍ의심 환자와 접촉한 뒤 귀국한 모든 의료진과 여행객에 대해 21일간의 의무격리 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봉사활동을 한 의료진을 3주 동안이나 강제로 격리시키는 것은 야박해 보이기도 하고, 인권침해 논란도 있지만, 안전을 우선시하는 미국민은 우리나라 국민과는 다른 의식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대원 파견 시,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필요할 경우 선진국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제공할 수도 있고, 상황이 위급할 경우 미국ㆍ유럽에 급히 이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고, 파견근무를 마친 뒤 에볼라 잠복기 동안 현지 또는 제3국에 격리해 증상을 관찰한 뒤 귀국 조치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에볼라 감염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자국민도 꺼리는 미국이 의심되는 타국민의 일시 체류를 용인할 리 없다.

 A씨의 경우처럼 기니ㆍ 라이베리아ㆍ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한 뒤 에볼라 감염 증상을 보여 격리 병상에 입원한 사람은 지금까지 총 4명이다. 에볼라 의심 증상을 보인 사람은 약 21일간 격리돼 관찰을 받게 되는데 거기에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21일을 잠복기간으로 볼 뿐, ‘의학적’인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잠복기간이란 생물의 반응계에서 반응을 일으키는 원인이 작용하고 난 후, 반응이 나타나기까지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세균ㆍ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의 경우 체내에 침입한 후 그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잠복’ 혹은 ‘잠복기’란 개념조차 부정한다. 인체를 드나드는 수많은 병원성 미생물 대부분이 실제로 질병을 유발할 정도의 집락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잠복기’가 의미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까닭이다. 즉 발병하면 ‘잠복기’로 설명하지만, 발병하지 않을 경우, ‘잠복기’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처럼 가장 기초적인 논리조차 의학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급성 HIV 증후군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3~6주 후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무증상 잠복기가 10년 정도 지속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광우병 바이러스의 경우, 통상적인 바이러스처럼 임파구의 망상조직에 몇 년 동안 잠복기 상태로 숨어 있을 수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어떤가. 수십 년 동안이나 인체 내 어딘가에 숨어있기도 한다.

 이와 함께 우리는 보균자라는 말을 흔히 접하게 되는데 이 또한 잠복기와 마찬가지로 현대의학이 만들어낸 용어로 매우 모호한 용어이다. 보균자란 어떤 병원성 미생물을 몸속에 갖고 있어도 질병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보균자는 영원히 병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잠복기가 있다면 잠복기를 거쳐 언젠가는 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이미 지적했듯 대부분의 미생물은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균이 일으키는 어떤 질환이라도 정해진 잠복기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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