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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문화 연 ‘생명 평화’ 속삭임 품다
새로운 길 문화 연 ‘생명 평화’ 속삭임 품다
  • 김봉조
  • 승인 2015.01.07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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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하동군 위태마을~하동호)
▲ 트레커들이 오율마을에서 궁향마을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으며 생명의 원초적 소리를 듣고 있다.
낙동강ㆍ섬진장 나누는 수계 물길
오솔길 사계절 옛길 정취 물씬
상위태 출발 11.8㎞ 4시간 소요

 한반도의 중심 골격인 백두대간을 따라 뻗어 온 산줄기가 지리산 천왕봉에 닿기 전 세석고원을 펼쳐놓은 지리산의 중심 영신봉에 이른다. 여기서 남부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갈라져 내린 산맥이 경남 땅에 길지(吉地)를 열어주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을 낳고 있다. 청학동을 품은 삼신봉에서 외삼신봉과 고운동재를 지난 산줄기는 옥산을 정점으로 낙동강과 섬진강 수계(水界)로 물길을 나눈다. 즉, 낙남정맥 북동쪽은 낙동강으로 물이 흐르고, 남서쪽은 섬진강으로 물길이 내어준다. 여기, 지리산 남쪽 자락에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길에서 묻어나는 정취에 취해 걸어보자.

 2007년부터 준비된 지리산 둘레길은 2015년 현재, 총 274㎞에 걸쳐 22구간으로 연결돼 있다. 그중 지리산 둘레길 10구간인 하동군 옥종면 위태 마을에서 청암면 중이리 하동호를 잇는 11.8㎞ 트랙이 이번에 소개할 구간이다.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중태재를 넘어서면 하동군으로 접어든다. 트랙의 시작은 상촌이라 불렸던 상위태 마을 회관 앞에서 시작한다. 상촌제 저수지를 좌측에 끼고 안마을에 들어서면 상수리나무 당산이 마을의 수호신답게 우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정돌이 민박 갈림길에서 밤나무 과수원을 사이로 나있는 지네골 오름에서 뒤돌아 본 위태마을 풍경이 평화롭고 풍요롭다.

 세월에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구불구불 다랑이 밭을 지나, 주산 등산로 갈림길 지네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황금빛 마른 솔잎이 윤기 있게 깔린 오솔길이 빠져들 듯 이어지고, 낙엽들이 자리를 차지한 개울물은 얼음 모자를 뒤집어쓰고 시간을 내려놓고 쉬고 있다. 두 사람이 비켜가기 비좁은 길을 돌아 내려서면, 작은 계곡을 숨긴 대숲에 둘러싸인 감나무는 붉은 까치밥을 차가운 겨울 하늘에 맡긴 운치가 멋스럽다. 백궁선원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아래쪽 오율마을로 내려선다. 정원이 잘 정리된 전원주택에는 인적 대신 개 짓는 소리만 정적을 깬다. 민가를 가로질러 임도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매실와인 공장이 있는 우측 경사를 접어들어 이내, 좌측 산길을 당겨 오른다.

▲ 둘레길을 걸어 거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면 하동호에 비친 아름다운 산세를 감상할 수 있다.
 경사가 일어선 침목 숲길을 거친 숨소리로 10분여 오르면, 가늘게 이어진 옛길은 물씬 호기심 어린 눈길을 여러 곳에 옮긴다. 궁항리 뒷골마을(후곡)로 가는 길을 만나면 좌측 아래로 내려선다. 다랑이논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양이터 마을 곡선 길을 감상하며 내려서면, 대숲위로 걸쳐진 낙남정맥은 마루금을 질겅질겅 잇고 있다. 지형이 활처럼 생겨 활미기라 불린 궁항마을 회관 앞에서 1014번 지방도를 건너 다랑이논을 가로질러 양이터재로 향한다. 양이터마을은 임진왜란 때 양씨와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피신해서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대나무 숲에 숨은 터가 은둔하기 안성맞춤인 오지마을이다.

 궁항마을에서 느리게 1시간이면 지나는 양이터재는 옥종면과 청암면을 아우르는 재로 낙남정맥이 지나는 곳이다. 쉼터와 편의시설이 갖춰진 양이터재에서 나본마을 까지는 2.8㎞ 내리막 길이다. 5분여 임도를 따라 걷다 우측 물소리가 들리는 사잇길로 비스듬히 접어든다. 발아래 돌출된 돌들이 약간은 조심스럽게 걷게 하지만 더없이 한적한 길이다. 내려갈수록 빠져드는 물소리는 자꾸 주위를 휘둘러보며 정취에 동하게끔 한다. 오랜 노거수와 때 묻지 않은 옛길은 꿈에 취한 듯 어둠이 돼 반긴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대나무 숲길’이다. 댓잎 사이로 투영되는 어둠과 빛에 든 이는 마치 알몸처럼 가벼워진다.

 대숲을 걸어 나오니,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 위에 반영을 내려놓은 칠성봉이 정상을 하동호에 띄워놓고 섬진강 넘어가는 석양의 역광에 묻혀 윤곽만 비추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큰물을 만난다는 나본(본촌)마을 하얀 천막 구조물은 하동호 전망대를 이국적인 풍광으로 담는다. 경남에서 가장 규모가 큰 농업용 산정호수인 하동호에 모인 물은 하동군 관내와 사천시 서포면 까지 보내지며, 청학동에서 묵계제를 거쳐 흘러내린 횡천강 지류는 횡천면과 하동읍을 지나 섬진강에 합류된다. 반영이 아름다운 하동호 이곳저곳에 눈길을 주며 댐 수문 위를 지나, 재개장을 준비 중인 청학콘도에서 이번 트랙의 끝점을 찍는다.

 자가운전으로 접근하려면 남해고속도로 곤양IC를 나와 58번 국도를 타고, 곤명면 사무소(다솔사역)에서 만난 2번 국도에서 좌측으로 운행한다. 옥정리 오일뱅크 삼거리에서 1005번 옥종면 소재지를 지나 좌측 1014번 지방도로 이동한다. 다시 회신 삼거리에서 59번 도로를 타고 돌고지로를 3㎞쯤 진행하면 위태마을 회관 앞에 도착한다. 트랙은 상위태~지네재~백궁선원표지판~오율마을~매실와인공장~후곡갈림길~궁항마을~양이터~양이터재~대숲길~나본마을전망대~하동호를 잇는 11.8㎞로, 소요시간은 여유 있게 4시간이면 이동 가능하다.

▲ 양이터재에 발길이 닿으면 낙남정맥을 알리는 안내판에 눈길이 머문다.
 길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왜 걸으려 하는지 제각각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우기 위해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등 걷기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걷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여가 활동의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한 지 오래다. 이젠 걷기 문화가 정착 단계에 온 것이다. 처음에 붙였던 성찰이니, 순례길이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 보다, 그 속에 이어진 무수한 길 위에서 문화와 풍속을 느끼고 배우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길 위에서 만난 자연에 동화돼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사색하는 것이 사람과 생태계가 가장 건강하고 아름답게 공존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새로운 길 문화의 패러다임인 ‘생명의 평화’로 자연과 사람이 함께 가는 길이다.

 오래전 변변한 정보와 자료도 없이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16일에 걸쳐 지리산 둘레 600백리를 돌아본 적이 이었다. 그 후 둘레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문제점을 확인하고, 많은 분들이 대안 제시를 통한 노력과 관심으로 걷고 싶은 지리산 둘레길이 만들어졌다. 그 길을 찾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곳을 허락한 주민들의 배려에 대한 고마움과 생명의 평화를 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 전 구간이 다 아름답지만, 그중 둘레길을 완성한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위태마을에서 하동호 구간이 계절에 구분 없이 가장 아름답다고들 한다.

 글 : 김봉조 낯선트레킹 대장
 사진 : 최찬락 Mnet트레킹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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