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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독립정신 조명 시대가치로 붙잡는다
젊은 독립정신 조명 시대가치로 붙잡는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5.01.01 2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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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윤봉길 정신
▲ 지난해 7월 3일 윤봉길함이 진수됐다. 윤봉길함은 윤봉길 의사의 독립정신과 나라사랑이 강철의 해신으로 부활한 것이다.
윤 의사, 세계에 알린 독립 의미 새겨야
윤봉길함 진수ㆍ부대 창설은 나라사랑

 광복 70년ㆍ분단 70년인 2015년 새해가 밝았다. 나라를 일제로부터 되찾고 남북이 떨어진 후 사람의 한평생 같은 세월이 흘렀지만 광복 정신은 퇴색해 그 빛을 잃었고 남북 대치상황의 긴장감은 여전히 그대로다. 70년의 의미가 남달라야 하는 이유는 이 시점에서 제2의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분단의 물꼬를 화해의 큰 강으로 모아야 하는 민족적 과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젊은 독립정신이 필요하다. “사람은 왜 사느냐”라고 묻고 “이상을 이루기 위해 산다”고 외치며 그 이상을 조국광복과 나라사랑에 바쳤던 사람, 바로 윤봉길 의사다. 윤 의사가 온몸으로 안았던 조국독립을 위한 희생을 남북이 화해로 나가는 징검다리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윤봉길 의사는 23살에 조국독립에 한 몸을 던지기 위해 혼자 중국으로 떠났다. 윤 의사는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후 1932년 4월 29일 일왕 생일축하와 전승기념식이 열리던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독립운동의 큰 불씨를 당겼다. 그 후 윤 의사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윤 의사가 일제를 향해 던진 수통 폭탄은 대한독립의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의거다. 장제스는 중국 100만 대군이 못하는 일을 한국의 한 의사가 능히 해냈다고 치켜세웠다. 윤 의사의 거사 이후 지리멸렬하던 항일독립운동은 활기를 되찾았고 독립에 대한 외국 정부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이어 카이로 선언 등 국제적으로 독립의 여건이 새롭게 조성됐다.

▲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홍커우 의거 전 태극기를 배경으로 손에 폭탄을 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 사람이 일제를 향해 날린 외침은 조국의 광복을 향한 거센 메아리가 되고 독립의 숭고한 메시지를 민족의 가슴에 새겼다. 젊은 윤봉길이 혈혈단신 만주로 향할 때 그 마음은 한없이 쓸쓸했을 것이다. 가슴에 독립을 향한 애국심은 끓었지만 고향에 남겨놓은 아내와 두 아들을 생각하면 그 발걸음은 쇳덩이를 단 것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물론 윤 의사는 집을 나서면서 ‘장부가 집을 나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은 편지를 남긴 채 만주로 갔다. 특히 윤 의사는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라는 편지에서 두 아들이 아비를 이해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어머니께 효도하기를 당부했다. 자애로운 아버지로서 윤 의사는 눈물을 닦아내고 의연하게 조국의 남아의 좁은 길을 걸어갔다.

 윤봉길의 결연한 의지는 동포에게 보내는 유서에서도 잘 나타난다.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이지만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해서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하겠다’고 했다.

▲ 윤봉길 의사가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로 시작하며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
 지난해 7월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윤봉길 의사가 강철의 해신으로 부활했다. 동북아시아 최강 잠수함이 윤봉길의 이름을 달고 진수돼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윤봉길함’으로 명명됐다. 윤봉길함은 오는 12월 해군함정으로 취역을 앞두고 현재 조선소에서 시운전 중이다. 그 후 수개월간의 전력화 과정을 마친 다음 2016년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윤봉길함은 수중 배수량이 1천860t에 달해 크기나 성능 면에서 북한이 가진 모든 잠수함을 압도한다. 수중 배수량이 4천200t에 달하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소류급이나 중국의 3천600t짜리 위안급보다는 작지만 성능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윤봉길함은 5번째 214급(1천800t) 잠수함으로 길이 65.3tㆍ폭 6.3t의 최신 디젤 잠수함으로 최고 속력 20노트와 공기불요 추진체계를 탑재해 2주간 수중에서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

 윤봉길함 부대 창설식이 지난 9월 1일 진해군항 9전단 연병장에서 열렸다. 초대함장에는 김외갑 대령이 취임했다. 김 함장은 이날 “잠수함 안전운용 22년을 달성한 전통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맡은 직무에 더욱 충실하겠다”며 “윤봉길 의사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우리 영해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 지난해 9월 1일 진해군항 9전단에서 윤봉길함 부대가 창설돼 김외갑 초대 함장이 취임했다.
[인터뷰] 김외갑 윤봉길함장 인터뷰

“윤봉길함은 윤 의사 조국愛 부활”

 - 광복 70년 해를 맞아 윤봉길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생각하면 윤봉길함 함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텐데?

 “윤봉길 의사는 23살에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 사내 대장부는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비장한 글을 남기고 조국독립을 위해 부모형제ㆍ처자식을 남겨두고 혈혈단신으로 중국으로 떠나 25세가 되던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 수뇌부를 처단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윤봉길함의 초대 함장이라는 중책을 맡겨준 국가와 국민에게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윤봉길 의사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 25살의 나이로 조국을 위해 생명을 던진 ‘청년 윤봉길’을 생각하면서 젊은 군인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윤봉길 의사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뒤로한 채 머나먼 중국으로 건너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쳤다. 이는 조국독립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젊은 군인들도 윤봉길 의사처럼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어떠한 어려움이나 두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광복 70주년을 맞아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치신 여러 선조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분들이 그토록 외치고 싶었던 독립된 조국을 이제는 젊은 우리가 지키겠다고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으면 한다.”

 - 윤봉길의 고귀한 독립정신이 윤봉길함으로 부활한다는데 그 뜻은?

 “우리 잠수함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크게 공헌하거나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해 존경받는 인물을 함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군함은 철로 만들어진 ‘쇳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이 ‘쇳덩어리’에 혼을 불어 넣을 때 비로소 진정한 군함이 될 수 있다. 우리 윤봉길함 승조원은 윤 의사의 숭고한 정신 아래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조국의 바다를 지키므로 윤봉길 의사가 부활한 거라고 볼 수 있다.”

 - 작년 9월에 진해에서 윤봉길함 부대가 창설됐는데 그 의미는?

 “부대 창설 이전에는 선발대라는 일부 승조원만이 조선소에서 잠수함 건조를 확인했으나 부대가 창설됨으로써 함장을 비롯한 본대 인원이 구성돼 인사ㆍ군수ㆍ예산 등 완벽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5번째 최신예 잠수함으로써 첫발을 내딛게 됨을 대내외에 알리게 되는 것이다.”

 -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윤봉길함은 2016년에 전력화되나?

 “우리 윤봉길함은 2015년 말에 해군으로 인도돼 일정 기간 전력화 기간을 거친 후 2016년에 작전에 투입될 수 있는 완벽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 윤봉길함은 어떤 무기체계보다도 더 조용하고 은밀하게 적의 심장 깊숙한 곳에 침투해 핵심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 우리 해군 잠수함 작전의 주력함이 될 것이며 평시에도 전략적 임무를 수행하면서 적을 가장 두렵게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 광복 70주년인 동시에 분단 70주년의 해인데 군인으로서 각오는?

 “광복 70주년인 동시에 분단 70주년이라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군인으로서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6ㆍ25와 같은 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싸우면 이길 수 있는 최고도의 전비 태세를 항상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우리 윤봉길함은 국가의 자존심이자 보이지 않는 해군의 힘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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