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2:23 (토)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세대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세대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4.12.28 2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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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 전무이사 박재근
 ‘너무 쪽팔리잖아.’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발표 후 한 트위터 이용자가 토로한 말이다.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란 것, 담뱃세 등을 올리고도 ‘증세’는 아니라는 등 핑계만 득실거리고 있다. 서로 남 탓만 하고 잘못했다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모든 일에 나의 ‘옳음’만을 주장, 갈등은 더 증폭되고 있다. 명확한 실체는 없고 자의적이고 비논리적인 판단을 강요하는 등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된듯하다.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이해나 배려는 찾아보기가 힘든 한 해였지만 벌써 12월 29일. 글피면 험난했던 갑오년도 다한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던 2주갑(二周甲) 전인 120년 전의 갑오년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올해의 파장과 갈등은 대단했다. 갑오년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건강하고 힘찬 해였다. 또한 2014년 갑오년 청말띠라는 점에서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해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등 이어진 대형 사고에다 ‘슈퍼 갑질’로 인한 아픔과 갈등은 영원히 씻어지지 않을 갑오년의 또 다른 기록으로 추가될 것이다. 관피아, 정피아 등 지금 대한민국은 이익만 챙기려는 집단이 정치, 경제, 문화, 체육계 등 사회 전반에 짝 깔려 있다.

 하지만 곧바로 청산할 것 같은 적폐척결은 빈말에 그쳤다. 혁신은 온데간데없고 그대로인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으로 인한 피로감 등 거의 폭발 직전이다.

 또 소통 부재로 인한 갈등과 사회지도층의 몰지각한 행태로 인해 국민들이 겪는 상실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지경이다. 말을 보고도 사슴이라는 게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진시황제를 섬기던 환관 조고(趙高)는 시황제 사망 후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나이가 어린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했다. 간교한 술책을 부려 원로 중신들을 처치하고 최고 관직인 승상에 올라 조정을 한 손에 틀어쥐었다.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끌어다 어전에 갖다놓고 “말입니다”라고 했다. 황제 호해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느냐”라고 묻자 조고는 끝까지 말이라고 우겼다. 호해가 중신들에게 “저게 뭐 같소? 말이오, 아니면 사슴이오?”라고 되묻자 조고를 두려워한 중신들은 “말입니다”고 답했다. 그중엔 “사슴입니다”라고 직언한 사람을 조고가 죄를 뒤집어씌워 모두 죽여 버렸다. 그 뒤로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호해는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해 정사에서 손을 뗐다고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적었다.

 윗사람을 농락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지만 흑백이 뒤바뀌고 사실이 호도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작년 이맘때 교수신문이 뽑은 단어는 도행역시(倒行逆施)였다. 순리와 정도에서 벗어나 일을 억지로 강행한다는 뜻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원칙을 우선으로 한 기대와 달리 거듭되는 정책, 특히 인사실패를 비꼰 것 같다. 왜 이리 부정적인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물론, 기대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과 실망감이 엿보인다. 사안의 본질에 눈감으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이리저리 둘러대는 권력자들을 향한 쓴소리로 들린다.

 청와대에서부터 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권력자, 그 언저리에 있는 부나비들이 혹여 사슴을 말이라고 일컫는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살펴볼 일이다.

 염치가 있건 없건 한몫 챙기려는 이익 다툼이 가득하고, 자기 몫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도 가득한 모습의 우리 사회는 함께 추구해야 할 일들을 상실한 듯하다. 지도자들, 리더그룹이 솔직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는 함께 가꾸어가는 것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바뀌어야 한다.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으면 그만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해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해서 이것이 있는’것 아닌가. 이제 2014년도 다하는 종착점에 왔다. 글피면 생명을 상징하는 푸른색에, 순하지만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청양(靑羊)띠의 해다. 2015년은 사슴을 가리켜 사슴이라고 하는 사회, 피해가 없다면 뜬금없는 말이라 해도 폭력으로 강요하지 않는 이상 용인해줄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한 해가 다하기 전에 잘못이 있다면 다 털어놓고 참회하자. 무심코 내뱉은 말, 신중하지 못한 글, 조심성 없는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序詩)다. 부끄러운 점이 있다면 모두가 참회하자. 2015년 새해에도 쪽팔려서야 되겠는가. 제발 쪽팔리지 않는 해가 되길 바라며 갑오년 끝자락에서 작별을 건넨다. 소중한 사람들과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을 나눠야 할 시간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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