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째 연인
76년째 연인
  • 정창훈
  • 승인 2014.12.2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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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김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그동안 눈이 아파 밀린 일도 처리할 겸 주말에 출근했다가 퇴근길에 눈에 좀 무리가 가더라도 영화를 보고 싶었다. 솔직히 슬프다고 소문이 난 영화라서 눈물 한 바가지 흘릴 생각을 하니 혼자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개봉 24일 만에 관객 200만 고지를 넘기고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한 진모영 감독의 감동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사랑이라는 게 가지고 있는 그 진정한 가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영화는 조그만 강이 흐르는 강원도 횡성의 아담한 마을에서 76년 동안 사랑이라는 변치 않는 믿음으로 아름답게 동행한 89세 소녀 감성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로맨티스트 조병만 할아버지 노부부의 실제적 삶을 바탕으로 사랑과 이별을 조용하고 담담하게 그려낸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노부부는 천진난만한 소년 소녀였다.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노부부는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면서 즐거워한다. 여름엔 개울가에서 개구쟁이처럼 물장구를 친다. 가을엔 함께 낙엽을 쓸다가 모아 놓은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매일이 신혼 같은 백발의 노부부다.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꼬마를 묻고 함께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할아버지의 기력은 점점 약해져만 간다. 비가 내리는 마당, 점점 더 잦아지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듣던 할머니는 친구를 잃고 홀로 남은 강아지를 바라보며 머지않아 다가올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한다.

 영화는 두 노부부가 보내는 사랑의 마지막 계절을 얘기하지만 달리 특별한 장면이나 말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함께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두 노부부의 일상을 잔잔하게 얘기한다. 남겨진 자의 사랑의 절규와 죽음 앞에서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 강을 건너고 나면 더 이상의 시간과 기회는 없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 서로가 감사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작과 끝이 강이었다. 그리스 신화에도 저승에 가면 5개의 강인 비통의 강 아케론, 시름의 강 코퀴토스, 불길의 강 폴레게톤, 망각의 강 레테, 증오의 강 스틱스가 있다고 한다. 성경에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건넜던 요단 강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으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한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건너야 할 강들이 있다고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과 행복이라는 여행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랑하는 자들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아는 사람들이다.

 할아버지는 얼굴을 맞대고 누우면 할머니 얼굴을 쓰다듬는다. 다들 모른다. 14살에 시집간 할머니를 할아버지는 항상 쓰다듬었단다. 사랑은 결국 쓰다듬는 게다. 연애를 짧게 하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삶 속에서 소중하게 가치를 두어야 할 사랑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으로 툭하면 갈라서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영적 빈곤의 단면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아름답게 채워 주었다.

 영화에서 어느 순간 가슴 속이 답답하고 울컥하다가 다시 흐려지고 약해지기를 거듭하다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영화관 여기저기서도 작은 흐느낌이 들려왔다. 할아버지의 기차 화통처럼 거친 숨소리가 거듭되자 할머니가 아궁이에 할아버지 옷가지를 태운다. 떠날 때 가볍게 가시라고 소홀함 없이 챙겨준다. 막바지에 할아버지의 실제 죽음은 눈앞에서 일어난 커다란 슬픔이었다.

 영화 속 노부부는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지 못 했다. 하지만 이들이 그들보다 더 큰 행복 아래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부질없이 사라질 것들을 움켜쥐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이 쌓여갈수록 생각은 깊어가지만 행동은 오히려 단순해지고 편안해지기 마련이라고 한다. 내려놓음이 무엇인가를 점차 알아간다는 말이다. 노부부가 자신들의 인생으로 보여주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그래서 깊다.

 이 영화가 전해주는 울림은 어떤 금언이나 지혜보다는 노부부가 온몸으로 살아온 76년간의 세월을 있는 그대로 그려주고 있다.

 연인은 몹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이다. 둘이 서로 사랑하고 있을 때만 연인이다. 서로가 말벗이 돼주고 같이 밥 먹고 함께 애기하고 놀아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그런 관계다. 영화 속에서 조병만 할아버지는 강계열 할머니에게 ‘봄이 돼서 꽃이 피면 참 예뻐, 거기서 딱 멈추면 좋은데 가을이 되면 서릴 맞고 떨어진단 말이지’라고 말한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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