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4:20 (금)
해풍이 전하는 전설 들으며 해안서 마음 씻다
해풍이 전하는 전설 들으며 해안서 마음 씻다
  • 김봉조
  • 승인 2014.12.10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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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 서포면 비토섬
▲ 비토섬 해안을 걷던 트레커들이 바닷바람을 쐬며 잠시 쉬고 있다.
토끼가 날아오른 전설
간조시간 체크하고 찾아야
대나무 걸대방식 굴 양식
월등도를 거쳐 4.6㎞ㆍ2시간 30분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을 동화 속 아름다운 이야기로 담아 인간의 지혜와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다룬 구비문학(口碑文學)들이 만들어졌다. 그 속에는 해학을 통해 세상살이를 풍자하고, 단순한 가르침을 넘어서서 더 큰 이면적 교훈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특히 우화소설(寓話小說) 별주부전(鼈主簿傳)은 다양한 구성으로 판소리 수궁가(水宮歌)로 불려지면서 더 친근감 있게 우리 곁에 함께해 왔다. 여기 수궁가의 한 대목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절을 연상하며 토끼가 날아오른 섬, 비토(飛兎) 해안길은 따라 걸어보자.

 갑자기 찾아온 초겨울 한파를 정면으로 안으며 찾은 곳은 사천시 서포면에 위치한 비토섬이다. 남해고속도로 사천 IC를 빠져나와 사천공항을 지나 3번 국도를 타고 사천시청 앞 주문리 해안에서 좌측 사천대교를 건너면 서포면이다. 면소재지가 있는 구평리에서 좌측 토끼로 1005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검섬 삼거리를 지나면 연육교 비토교를 만난다. 갯벌을 관찰할 수 있는 해상 데크가 여유로움을 주는 두 번째 다리 거북교를 지난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굽어 돌아 100여m 진행하면 바다가 있는 해안선 언덕 비탈에 30평 남짓한 공터가 나타난다. 낙지포 마을 1.7㎞ 이정목이 있는 이곳이 비토섬 해안길 트레일의 들머리다.

▲ 트레커들이 토끼ㆍ거북이 캐릭터 모형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꽈리를 틀 듯 희미한 오솔길을 3분여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지척에 까치섬 해안이 펼쳐진다. 굴 양식장과 어우러진 해안에는 굴 껍질과 모래가 밟히는 사각거림이 해풍에 담긴 바람과 어우러져 트레커들을 마냥 동화 같은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파도가 만든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은 제주 용두암의 바위를 축소한 듯 잠시 잠시 발길을 붙들고 카메라 셔터에 멈추는 즐거움을 담는다. 공룡의 다리처럼 삐죽 나온 해안 갯바위에서 바다를 품고 서면, 하동 금남면과 남해 설천면을 잇는 남해대교가 노량해협의 빠른 물살 위에 붉은색의 교각을 뻗치고 섰다. 그 위로 고만고만한 섬들을 뿌려놓은 하동 금오산이 하늘금을 긋고 무게 있게 자리하고 있다.

 굴 껍질이 다닥다닥 붙은 해안 바윗길 위에는 수억 년 파도에 단련된 갖가지 모양의 무늬와 학계에서 확인한바 있는 크고 작은 공룡 발자국들이 신비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활대처럼 휘어진 해안 길을 한가로이 따라 걷노라면 수면 위로 재래식 김 양식장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조금씩 방향을 달리하며 제각각의 형태를 꾸밈없이 보여준다. 유연한 곡선 위에 볼록볼록 튕겨 나올 것 같은 바위와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독특한 생김새는 변산반도의 채석강을 연상시킨다. 얕은 돌담을 쌓아 만든 전통 어로방법인 독살을 설치한 갯바위에서 굴을 따시던 할머니는 즉석에서 자연산 굴을 입에 넣어 주시며 비토섬 굴 자랑에 깊이 팬 주름을 펴며 웃는 모습이 정겹다.

 해안선을 따라 1시간여 걸었다면 명승횟집이 있는 거북로 해안에서 계단을 올라선다. 잠시 도로를 걷다 보면 잘 만들어진 방파제가 어선들과 어구를 보듬고 잔잔한 포구를 에워싸고 있다. 폐교된 비토초등학교를 지나 두 번째 방파제 입구에 이르면 수협 활어 위판장이 있고, 편의 시설이 이용할 수 있다. 방파제 끝에서 인도교를 잇는 별학도는 멋스러운 방갈로를 설치해 놓고 낚시공원 개장을 준비하고 있고, 멀리 아치형 현수교인 삼천포 대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해안도로 가에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굴을 까는 아낙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유연하게 이어진 한적한 도로를 5분여 걸으면 널찍한 마당에 비토섬 명물 ‘석화구이’를 굽는 장작불 연기가 구수한 굴 내음과 재미스러움에 섞여 짙게 풍긴다.

▲ 아낙네들이 재래 방식으로 굴을 까고 있다.
 다시 우측 해안길을 내려서서 낙지포 방향으로 걷는다. 발길을 내딛는 갯바위에는 바닷물에 침식되고 세월에 풍화돼 특이한 문양을 한 돌들이 이채롭게 눈길을 끈다. 오래된 선착장을 감아 돌면 질퍽한 해안갯벌이 비토횟집을 마주하며 걷는다. 양해를 구하고 굴 까기 작업에 바쁜 횟집 앞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 봤다. 즉석에서 깐 굴을 입에 넣어주며 먹어보라 권하시는 인정 많은 아주머니께서는 비토섬 굴이 맛있는 이유는 밀물과 썰물의 영향으로 다른 곳의 굴보다 육질이 쫄깃하고 맛있어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비싼 값에도 경매 1순위라 자랑하신다. 굴 향을 뒤로하고 길 건너 공사 중인 별주부전 테마공원을 살펴보고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좌측으로 열린 갯벌을 끼고 얕은 언덕길을 따라 10분여 걸으면 버스 종점이 있는 하봉 마을에 닿는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별주부전의 주인공 토끼가 거북이 등에 올라타고 있는 캐릭터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썰물 때만 길을 열어주는 월등도로 가는 평화로운 갯벌에 내려서니 탁 트인 바다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귓전을 때린다. 바다 건너 사천의 진산 와룡산이 길게 누운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 월등도는 용궁에 잡혀갔던 토끼가 꾀를 부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라 해서 ‘돌아오다의 돌’, ‘당도하다의 당’자의 첫 글자를 따서 현 주민들은 ‘돌당섬’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월등도는 토끼와 별주부전의 전설이 있는 곳이고 실제 토끼와 거북이가 섬이 돼 남아 있기도 하다.

 비토섬 해안길을 따라 걷고, 월등도를 둘러보고 싶다면 반드시 사전에 물때표를 확인하고 ‘간조 시간을 체크’해야 한다. 그건 비토섬의 숨은 매력을 볼 수 있는 것이 간조 시에 훨씬 많기 때문이다. 다져진 갯벌을 지나 언덕 베기를 넘어, 월등도의 몇 안 되는 민가를 지나면 해안 갯벌 가장자리에 기다란 데크를 설치해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해 놨다. 데크를 따라 끝까지 진행하면 맞은편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몸을 움 추린 토끼섬이 육지로 돌아오는 모습을 하고 있고, 삼천포 대교 방향에서 바다를 향한 거북섬은 용왕님께 혼이 날까 봐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섬이 돼 굳어 있다. 월등도에서 트랙의 끝점을 찍고 발길을 돌려 물 빠진 월등도 갯벌 위를 바라보면 갯벌 위 돌에 붙은 굴들은 하얀 꽃을 피우며 섬마을의 서정을 담고 정겹게 살고 있다.

 트랙의 시작점에서 해안길을 따라 걸어 바닷물이 빠진 월등도를 둘러보고 토끼와 거북이 캐릭터 모형이 있는 하봉마을까지 다시 나오면 전체 4.6㎞, 바다를 즐기며 쉬엄쉬엄 2시간 30분이면 넉넉하게 돌아볼 수 있다. 볼거리가 많은 바닷길을 걸었다면 겨울 비토섬의 명물 석화구이를 맛보는 쏠쏠한 재미야말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비토섬에서 채취되는 굴은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도 많지만, 대나무를 이용한 걸대방식으로 바다 바닥에 대나무를 꽂아 굴을 자라게 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여기에 붙어 자라는 굴이 하루 두 번 물때에 따라 바닷물에 빠졌다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햇볕과 공기를 접촉하면서 자란 비토섬 굴은 씨알이 야물고 탱탱해 그 맛이 탁월하다고 미식가들 사이에 소문이 난 지 오래다.

 현재 비토섬 여러 곳에서 굴을 까는 비닐하우스와 횟집에서 석화구이를 할 수 있는 장소와 기본 준비물을 제공해 준다. 4인 기준 석화 한 망을 주문하면 화덕에 장작불을 피워 철망 위에 석화구이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된다. 비토섬 남촌수산에서 석화를 판매하는 조경래 대표는 날씨가 추울수록 굴은 그 맛이 더 좋아진다며, 손수 장작불을 지펴주며 석화구이를 맛있게 먹는 법을 귀띔 해준다. 장작불과 함께 즐기는 석화구이 뒤에는 은박호일에 삼겹살, 소시지, 마늘, 양파, 대파, 레몬 등을 준비해서 김치 한 장 걸쳐서 먹으면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은 이 겨울 최고의 맛이라 전했다.

 비토섬에서 풍경과 맛을 즐겼다면 귀갓길 언저리에 길지 않은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곳은 찾아보자. 사천 8경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관광공사 선정 전국 9대 일몰지의 하나인 ‘실안낙조’다.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하고, 한해를 아름답게 정리하는데 눈부시고 강렬한 낙조만큼 흥분되고 진한 감동도 없을 것이다. 검붉은 온기로 가득한 바다 위로 묻혀가는 섬들과 어둠이 다가올수록 밝고 선명해지는 등대, 그때쯤이면 빠르게 흘러가던 물살 위의 죽방렴도 치열한 시간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아름다운 휴식을 제공하며 고요해진다. 연말연시 잠시나마 한 해를 뒤돌아보는 발걸음이 머물 수 있는 곳으로 비토섬 해안과 실안낙조를 추천한다.

 글 : 김봉조 낯선트레킹 대장
 사진 : 최찬락 Mnet트레킹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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