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1.2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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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65)
 211. 극장 일의 마무리

 나는 극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그림을 배웠다. 페인트와 휘발유의 혼합법, 색을 섞는 법, 간판 글자 쓰는 법, 이것저것 배우다 보니 어느덧 실력은 늘었고 이제 제법 주인공 얼굴에 손을 댈 수 있었다.

 1961년 전후 내가 극장에서 그림을 배울 땐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호경기였다. 성춘향과 춘향전은 그 시절 최고의 두 감독이 최고의 여배우를 각각 출연시켜 동시에 제작해 빅매치를 이뤘는데, 최은희가 주연인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흥행에 대박을 터트려 영화사는 승승장구하게 되고, 김지미가 주연한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은 흥행에 실패해 영화사도 가정도 파탄나고 만다. 그 시기 신영균이란 출중한 신인 배우가 나와 인기를 끌더니 ‘연산군’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삼천포 극장에서 성춘향이 개봉될 땐 앉아서 보는 사람보다 서서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연산군도 그러했다.

 또 재미있는 영화가 제작됐는데 그것은 희극 영화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 정서에서는 울고불고해야 흥행에 성공할 때였는데 ‘훌쭉이와 뚱뚱이’라는 영화는 제목 그대로 훌쭉한 배우와 뚱뚱한 배우가 등장해 관중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마부를 비롯해 로맨스그레이의 김승호도 훌륭한 연기로 인기를 끌었다.

 관중은 계속 밀려왔지만 극장이 작아 손님을 다 받을 수 없게 되자, 극장 측에서는 극장을 하나 더 짓기로 한다.

 그래서 극장주는 삼천포에서 운수 사업을 하던 분과 동업으로 노산 밑에 허름한 창고를 헐고 그곳에다 극장으로 지어 ‘제일극장’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 당시 삼천포 극장의 업무를 총괄하던 총무 철규 아저씨는 그 전에는 할머니집 이웃이었다. 그리고 우리 점포에선 늘 극장 포스터를 걸어주기 때문에 우리 집과는 각별한 사이이다.

 그래서 철규 아저씨는 전부터 나를 귀엽게 봐줬고, 아버지 청으로 나를 극장에 데려와 친절히 대해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제일극장이 개업하면서 그쪽 간판 그림을 나에게 맡기셨다. 그때 내 나이는 19세인데도 키가 자라지 않아 남이 보기는 17세 정도밖에 보이지 않을 때다.

 그러니 외모로는 아직 소년인데 그런 큰 작업을 맡기다니 나에게 벅차기도 하고 행운이기도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극장 간판을 그렸다. 처음 그린 작품은 외국 영화였는데 어떤 영화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림은 그려지고 간판이 올라가게 된다. 내가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철규 아저씨가 잘그렸다고 칭찬해 주신 게 기억에 뚜렷하다.

 여태껏 나는 극장에서 견습생이라 급료가 없었는데, 그때부터는 정상적인 급료가 나오게 되었다. 소년 시절 큰돈을 벌게 된 것이다.

 어디로 보나 나에게는 행운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 꿈은 만화가이다. 극장은 그림을 배우기 위해 들어온 것이다. 극장에 내 그림이 올라가던 날. 나는 극장 일을 중단하고 서울로 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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